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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INVISIBLE LAYER〉 VCR 〈INVISIBLE LAYER〉 VCR 〈INVISIBLE LAYER〉 VCR 〈INVISIBLE LAYER〉 VCR 〈INVISIBLE LAYER〉 VCR 〈INVISIBLE LAYER〉

VCR 〈INVISIBLE LAYER〉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기획초대전

VCR

<INVISIBLE LAYER>

참        여 : producer_김가와 / 작가_김보성, 구자선, 권서영, 이지혜, 이종훈

전시일정 : 2015.08.10(월) ~ 2015.08.29(토)  *오프닝파티 2015.08.21(금)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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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시선은 무시하고 계속 그려나가는 것

– VCR그룹의 <-INVISIBLE LAYER>전

 

부천국제만화페스티벌 동안에 우리도 관련된 전시를 기획하려고 하니, 평글을 하나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좋죠, 축제도 풍성해지고, 도전적인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면. 별로 길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 당연히 만화전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체는 생각과는 달랐다. 보다시피 이 작업들은 만화도 아니고, 애니메이션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작업은 무엇을 어떤 것을 지향하는 것일까.

VCR그룹의 멤버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이거나 수료생이다. 당시 문화산업에의 사회적 관심도를 증명하듯, 1995년에 개원한 영상원은 1997년에 이 학과를 증설했다. 1년에 15명만 신입생으로 받아들이는 높은 문턱은 이 학과의 졸업생들에게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진로설계는 만화작가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원래대로라면 상대적으로 높은 퀼리티를 지닌 만화작품이나 애니메이션 작품을 창작하고 있어야 할 인재들인 셈이다. 전공에서 진로까지, 아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계단처럼 보인다. 문제는, 진로설계와 현실의 불협화음이다. 해외의 유수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여러 번 경쟁작에 선출되었어도, 달리 말하면 그 충분한 역량을 인정받았다 할지라도, 막상 사회로 나오면 갈 곳이 없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들어가서 아동용 TV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거나,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광고 등의 외주작업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자기작업은 꿈꾸기 쉽지 않다. 지금이야 웹툰이라는 창구라도 있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만화 영역은 더 형편없었다. 졸업생들의 이름을 작가의 이름으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았었다. 몇 년 전부터 유사한 성향을 가진 졸업생들끼리 모여, 혼자서는 버티기 힘든 열정을 함께 나누며 작업을 모색해보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VCR도 그 탐색들 중의 하나이다.

이 그룹들 중에서도 VCR은 약간 특이하다. <쾅>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만화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모임이고, <스튜디오 쉘터(Stuidio Shelter)>는 애니메이션과 미디어 아트작업을 하면서 ‘10초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이들의 중심이 각자 만화, 애니메이션에 있다고 한다면 VCR은 아니다. 그럼 VCR은 무엇이 중심일까.

 

우선, 작품들에 집중해보자. 구자선과 이지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구를, 그림의 가장 전통적인 목적 중의 하나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한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세대답게 컴퓨터로 사후 작업을 거친다 해도, 이들의 기초는 연필과 수채화, 불투명 수채화이다. 너무 당연하겠지만, 오래된 도구라고 비난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고루한 것이 아니라 편안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화가들은 많은 문장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단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 짧게는 묘사하기 힘든 추상적인 것들을 하나의 공간에서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림이 가진 치명적인 매력들 중의 하나이다. 그녀들은 이런 고전적인 도구와 목적의 테두리 안에서 그려낸다. 자신들이 원하는 무엇이 제대로 화면에 드러날 때까지, 또는 은유적 표현이긴 하나 그림이 스스로 말하게 될 때까지.

물론 두 작가의 양태는 다르다. 구자선의 여우는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디에선가 살아가는 동물 같다. 마치, 우리사회의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하기 전까지의 천진난만한 아기들처럼. 이 존재는 그 자체로 이 척박하고 잔인한 세계에 지쳐있는 우리들을 안아주고 위로해준다. 따라서 그가 여우이건, 여우와 닮은 어떤 것이건, 또는 여우와 전혀 닮지 않은 어떤 것이라도 우리에게 아마 동일한 말을 건네고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그녀가 그려내는 것은 구체적인 여우이며 추상적인 위안이다.

이지혜의 하얀 말은 탐색 중이다. 다른 모든 요소들은 단순화되고, 눈과 코가 돋보이는 이 여행자는 네 다리로 많은 몽환적인 곳을 거쳐 나간다. 약간의 빛이 내리는 어두운 동굴 안, 향긋한 과일들이 열린 정원 안, 새도 사람도 모두 떠난 쇠락의 집안에서도, 그의 시선은 언제나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계속 나아가는 것처럼. 그렇지 않은 것은 단 하나, 가운데에 배치된 작품 뿐이다. 아마도 여행을 시작하기 전일까? 이미 이리 안정되고 평온해 보이건만, 그럼에도 길을 떠난다.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이질적 공간에서도 말은 주변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다. 사랑을 찾는다고 하지만, 이미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탐색이란 결국 가설(假說)을 확인하는 과정인걸까. 지속적인 형태와 색채의 탐색이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는 형상에 가장 가깝게 가는 것처럼 말이다.

김보성은 펜이라는 고전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측면에선 동일하나, 재현하는 방법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가 저장해두었던, 기억의 일부였을 터이나 완전히 잊혀진 사진들과 이미지들을 끄집어낸다. 이미지의 일부나 전체를 선택하여 그 형상을 일일이 펜선을 그어가며 재현한다. 비디오 테이프에 기록되어있으나 읽어내지 못해서 지직거리는 것처럼. 그리고 스캔하여 푸른 색을 입혀 출력한다. 이 과정에서 한 개인의 개별적인 기억은 사라지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기억으로 다시 나타난다. 사라진 개별적 기억에 새로운 ‘손-기계적’ 리터치를 하고, 그를 통해 보편적 경험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가 환기시키려는 기억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않으나 우리를 제어하고 우리를 간섭하고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다. 푸른 이미지들이 주는 묘하게 기계적 느낌은 우리를 잊었던 기억으로 끌고 들어간다.

권서영은 위 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지점에 서있다. 이 중 유일하게 만화적 그림체를 선보이며, 모델 같은 여성들을 배치한다. 한 사람이 그렸다는 걸 인지하고 계속해서 쳐다보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혹시, 같은 사람이 머리 스타일, 컬러 콘택트렌즈, 화장법과 옷을 바꾸고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자세히 보면, 아니다. 이 화려한 인물들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는 그녀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일반적인 만화의 여주인공들에게 하는 것처럼 감정이입을 할 수 없다. 남는 것은, 마치 길거리의 모르는 미인들을 보듯이 그녀들을 쳐다보는 것이다. 물론, 포토샵의 그녀들이 미녀처럼 보이면 말이다. 그리 보인다면 우리가 만화의 시각적 코드화에 익숙해져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권서영은 70여개의 유사한 이미지들을 세로로, 가로로 분할하여 커다란 캔버스천에 출력했다. 그녀는 이들을 철저히 비인간적인, 시각적으로만 가치 있는 존재로 다루기 때문이다.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그려진 이들은, 또 다른 시각적 만족을 위해, 해체되고 재배열된다. 코드화된 만화 속 캐릭터처럼 보였던 이들은 시각적 탐색의 재료에 불과하게 된다.

 

이제, 이들 사이에서의 공통점이 읽혀지지 않는가. 이들 모두는 접근하는 도구와 방법, 재현하려는 대상과 목적은 다르더라도, 동일한 동인(動因)을 지니고 있다. 시각적인 것의 탐구. 여우를 그리며 위로하건, 흰 말을 그리며 자신을 확인하건, 개별적 기억을 손-기계적으로 복원하여 관객의 기억을 추동하건, 코드화된 미인들을 그리고 결국 재료로 사용하건, 이들을 이렇게 작업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동력은 색과 형태의 끊임없는 탐색을 통해 무엇인가를, 그 느낌, 감각, 생각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이다.

이는 VCR 멤버들의 공동프로젝트인 <터미널>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이들의 기획의도에는 우리의 해석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 프로젝트는“기어이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문장을 그림으로 표현하는”것이다. 어떤 감명, 어떤 인상을 – 그것이 문장에서건 아니건 – 시각적 이미지로 떠올린다는 것, 그 머릿속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미지가 제대로 드러날 때까지 끊임없이 그려나가는 것은 시각예술가들의 대표적 특질 중의 하나이다. 단시간에 읽어내기엔 분량이 좀 있기도 하고, 바쁜 마음에 접근하면 이미지를 읽어낼 수가 없을 것이다. 차분히 읽어나가면, 각 멤버의 조형적 특징들이 조금씩 드러날 것이다. 상당히 아까운 것은 이번 전시에 함께 참가하기로 했던 박철로와 이종훈이 건강상의 문제로 작업을 진행하지 못해 결국 관객들과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이들의 작품은 터미널 프로젝트에서 약간은 맛볼 수 있다. 박철로는 문장에 따라 스타일이 약간씩 변화하고 있다. 의도적인지, 아니면 스타일이 정착되지 않은 것인지, 이 작품들만으로 파악하기는 좀 이르다. 반면 이종훈은 몇 안되는 작품이지만 공통적으로 유명한 만화작품에서 대사들을 가져오고 있고, 유머러스한 감각으로 채워내고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공간을 채울 수 있었다면 어떤 새로운 즐거움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다음 기회를 기다려본다.

 

여하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이들은 한예종 애니메이션학과 출신이다. 작품을 보다보면, 깜빡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자꾸 상기시키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것이 VCR그룹의 출발점이자, 이 전시회의 주제와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비디오레코더(Video cassette recorder, VCR), 지금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라진 비디오카세트 플레이어이다. 영사기와 블루레이(Blu­ray) 세대의 중간을 대표하는 기계. 새로운 것만 쫓아가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옛것에 머물려고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의 표명과도 닿아있다. 달리 말하면 이들은,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추구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세상은 보통 엄밀하게 만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 회화 등의 활동영역을 구분하고 있지만, 자신들은 그와는 입장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원래부터가 자신들은 그 어떤 것들보다 조형성과 시각성을 추구해왔고, 그것을 사람들이 애니메이션학과 출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지적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소신의 표현이다. 즉,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며,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경계선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유로움의 발산이다. 프로젝트의 이름도 괜히 터미널인 것이 아니다. 모든 노선이 여기저기로 뻗어나가는 곳, 서로가 겹쳐지고 어긋나고 만나기도 하는 곳 아닌가. 조형성이라는 자신들의 원칙을 추구하되 언제나 한 곳에 머물러있지는 않겠다는, 때가 되면 멀리 갔다가 또 돌아왔다가 할 것이라는 다짐이기도 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완전히 손으로 작업한 버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다시 스캔하여 컴퓨터로 보정을 해서 출력한 버전을 전시하겠다는 것이다. 보통은 전시공간에는 원본을 건다고 생각하기 마련일진데, 이들은 딱히 그런 강박관념은 없어 보인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수작업의 결과물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디지털 작업을 통해 보정한 파일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을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 간에, 이 역시 상식적 지식에 기대지 않는 태도인가 싶기도 하다. 기계복제시대에 아우라가 사라진지 언젠데, 여전히 원본에 연연하는 우리 역시 고정된 구분의식의 피해자들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천방지축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아트포럼 리> 같은, 원칙적 변방에 관심을 가진 소수의 관심만을 끄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멤버들을 서로 엮어주는 뿌리가 굳건하고 시각적 표현욕구가 강렬하다고 할지라도, 구분적 세상에 비구분적으로 버팅기기가 쉬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강제적 외부적 구획과 구분, 제한과 금지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이들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것을 고전적인 용어로, 작가의식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이 소중한 씨앗이 더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마음깊이 바란다. 물론 언제나처럼, 이 그룹의 제대로 된 첫 번째 기획전을,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는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충위로 잊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여기저기 경계 없이 오가는 장소를 구축하는 실천으로 기억할 것인가의 판단은 언제나처럼 우리 각자의 몫이라는 점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한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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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_<Rewind>_종이에 펜, 리소프린트_20x20cm_2015

fox_01

구자선_<여우책>_종이에 연필, 수채화_20x20cm_2015

detailed fantasy_03

권서영_<구체적 판타지>_포토샵_2015

001

이지혜_<사랑을 찾아서>_종이에 불투명 수채화_2015

이종훈

이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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