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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섭 〈남부고딕〉 조형섭 〈남부고딕〉 조형섭 〈남부고딕〉 조형섭 〈남부고딕〉 조형섭 〈남부고딕〉 조형섭 〈남부고딕〉

조형섭 〈남부고딕〉

 

■ 전시기간 : 2022. 03. 22. (화) – 2022. 05. 31 (화)

* 월-토 10:00 -18 : 00 / 일요일 휴관

■ 전시 : 관람예약제  구글폼 – https://forms.gle/5bk3r84XcA76vDM87

■ 장소 : 부천시 석천로 380길 61 디포그 아트포럼리 스페이스 서버

■ 문의 : artforum.co.kr / artforumrhee@gmail.com T.82(0)32_666_5858

■ 주최 :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부산의 동남부는 해운대를 포함한 해변에서 수영강과 광안리로 이어 지고, 이기대로 연결된 해안선은 북항과 남항으로 불리는 부산항으로 이른다. 넓은 황무지였던 해운대구의 절반 가까운 지역은 개발과 함께 신도시라는 이름을 가졌고, ‘신’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기 전 관련 법규 를 바꾸어 가며 지금의 해안가 바로 옆 초고층 아파트들을 세우기 시 작했다. 포화 상태일 것 같은 개발붐은 이어지는 해안선 가까운 지역 곳곳 에 촘촘하게 확산된다. 그 해안선을 따라 증축 되는 고층 건물은 고딕 성당 만큼이나 강렬한 표현력과 의미를 지니고 있을뿐 아니라 유 일하며 통일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종교화된 자본, 자본으로 만들 어진 새로운 종교? 이 도시와 관련한 공통의 언어가 구사하고, 표현하 고, 의미하는 것들은 무엇이고, 누구에 의한 코드화 일까가 이번 전시 의 질문이다.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의 배경은 행정 구역상 수영구와 남구로, 광안리 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을 나누어 가지며, 이 구역에서 순차적 으로 위치한 망미동, 광안동, 대연동에는 재개발과 재개발을 앞다투는 곳 들이 있다. 세 구역 모두 황령산을 중심으로 둘레를 이루고, 서로를 잇고 마주 보는 ‘수영로’라 불리는 대로를 공유하고 이 도로를 넘 어 바다를 향하고 있다. 이 대로를 따라 바로 한 두 블록 들어가면 수 많은 골목들이 있다. 잘 짜여 진 그물망이기보다 오히려 엉기고 설키고, 직선과 직선의 교차이기보다 굽은 사선과 나지막한 오르막의 연결 들이다. 아마도 이런저런 목적과 의도를 보태기 위해 특별한 예를 찾기 위해 다닐 필요도 없이 오래된 동네의 모습들이다. 집들은 골목과 골목으로 이로 이어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연결되는 나름의 삶의 방식들이 작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좁은 길들로 많은 사람들이 접촉하며 이루었던 생활의 문화는 다양성이 라는 이름의 지역을 만들었을 것이며, 그 속에서 세대를 이어 왔던 장소 의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다. 차량이 이용하는 대로보다는 보행자가 다 니는 보도, 좁은 길들이 도시의 다양성을 높이고 그 다양성이 도시 생존 을 담보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곳들은 자본의 논리와 함께 새롭게 재구 축화 되고 있다.

계획하지 않은 계획된 재개발은 노후한 건물, 낙후된 지역을 개발한다 는 명목으로 수십 년 살아온 거주민들을 내몰며 그들이 살았던 장소는 바다 전망을 가진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 설 것이다. 단순한 물리적 변화 를 넘어 새 공간에 거주할 주민들의 재배치…특정 경제적 요건을 갖춘 구성원들이 입주하고, 주거를 위한 삶의 장소는 온전히 교환 가치에 잠식되어 상품화될 것이다. 수십 년 이어온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비장소’라는 이름의 차갑고 중성적인 공간이 도시를 잠식한 다.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에 전도되고 주체성이 비어있는 공간은 사회적, 공간적 실천을 고려하지 않는다.

사라져가고 있는 집들과 골목 위에서 과거가 삭제되는 원통함도 있을 것이며, 다음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불안과 보상받지 못한 분노와 그 반 면에 이득을 가져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새 공간에서 새 삶의 방식이 작동되면 모두가 잊고 지날 일일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담보로 우리 가 잃은 것은 공간을 향유하고 변화시킬 자유, 누군가의 말처럼 도시에 거주할 자유는 고사하고 살던 곳에서 원할 만큼 거주할 자유, 자유라는 허망한 기표 그곳에 닿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심연을 메울 것인가, 틈을 만들 것인가, 골을 내어 파 들어갈 것인가?

■ 조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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