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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덕 추모유작전〉 〈이상덕 추모유작전〉 〈이상덕 추모유작전〉 〈이상덕 추모유작전〉 〈이상덕 추모유작전〉 〈이상덕 추모유작전〉

〈이상덕 추모유작전〉

이상덕

<이상덕 추모유작전>

2012.10.08 (mon)- 10.21(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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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덕 그는 부천에서 활동했으며 수채화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풍경을 그리고 정물을 그리며 나무를 그리고 도시를 그려왔습니다. 그는 변방의 화가였으며 한 번도 ‘중심’이라는 곳에 속하지는 못했습니다. 2011년, 그는 이제까지 그려왔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의 ‘검은 그림’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여기에 그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립니다. 1976년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행해졌던 그의 과정이 공개되는 전시입니다.

 

그림은 하나의 결정체입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오롯이 남겨지는 어떤 것이기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향유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특별한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 특별한 것은 보통 ‘새로운’이란 수식을 가지게 되지요. 저는 여기서 그 결정체의 변별점과 위치를 말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40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남겨진 그림들을 보면서 일단 그 의무이행을 미루고자 합니다. 대신 그가 그림을 그리면서 한 순간 한 순간 그가 느끼고 받아들이고 변해가는 것들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변함은 하나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변함을 보는 것은 하나를 보는 행위가 아니라 복수의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림을 물질로서가 아니라 정신으로 보는 행위입니다.

 

그는 변방의 화가였습니다. 미대를 나오지 않았지만, 화가가 되었고 그림을 계속해서 그렸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소위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는 여러 종류의 ‘버리기’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들은 형상을 버렸습니다. 그림이라는 형식자체도 버렸습니다. 그림과 소통하는 기존의 형식도 버립니다. 파격과 새로움이 ‘중심’에 속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버리는 것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예스러운 소재들과 구도도 그냥 간직합니다. 화가로서 먹고 사는 문제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설경이 많이 팔리니까 설경을 많이 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오래 한 가지를 그리진 않았습니다. 지겨우니까. 남들의 취향과 가치기준에 자신을 맞추다가도 어느새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산을 그리던 그의 붓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인 도시의 모습을 담게 되고 도시엔 사람이 있으니 사람을 그립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렇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90년대를 넘어서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회화의 종말론’과 함께 급격히 줄었지만 그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꾸준히 자신을 찾아 나갑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그냥 ‘또 다른 오늘을 산 나의 껍질’이라고 말합니다.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그냥 그 하루를 산 결과이므로 담담히 받아들이며 그렇게 하루하루 나아갔나 봅니다.

 

그는 이런 자신의 태도를 적어놓으면서 작가의 변명이라고 이름 붙여 놓았습니다. 그의 변명은 거대한 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변명이라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방법을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누군가의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어깨위에 올라선 것도 아닌 자신의 눈으로 솔직하게 보고 느낀 것을 그리려고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솔직한 눈은 사실적인 눈이 아닙니다. 객관적이고 차가운 눈도 아니며 감정에 휘둘리고 기억에 영향을 받는 눈입니다. 그는 이러한 불투명하고 단일하지 않은 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가 30대에 그린 그림에서 나는 그 어느 것에도 고정되지 않으려는 마음의 폭풍을 보았습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그린 그 그림은 눈보라를 그린 그림이면서 동시에 그 마음의 흔들림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곳의 바람은 그가 일생 동안 그린 그림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됩니다. 눈보라치는 매서운 바람은 미풍이 되기도 했고 산천을 감돌았던 바람이 도시를 휘감고 다니는 바람이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산천을 떠도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는 그림들은 주로 30, 40대에 그린 그림입니다. 50대가 되어가면서 그의 그림에 도시가 많이 나타납니다. 87년에 그린 ‘도시의 바람’이란 그림은 단순히 도시의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개 숙이고 뒤돌아 묵묵히 가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그림(1999)은 또 다른 흔들림을 그린 그림입니다. 사람들의 삶, 아픔들을 그림 속에 받아들이는 것은 예술가의 굳건한 자아세계 속에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커다란 흔들림이며 이 흔들림은 화가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로 인해 그의 바람(wind)은 또 다른 바람(wish)의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그림인 <검은 그림>2011에서는 그 새로운 바람(wish)이 불고 있습니다.

 

그 그림은 아직 제목이 없습니다. 그냥 전체적으로 검은 느낌이어서 ‘검은 그림’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그 그림 속에는 아파트가 그려져 있습니다. 뉴욕 센트럴 파크 주변을 둘러싼 장식적인 고층건물들과는 차이가 있는 밋밋한 네모 건물의 모습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이 건물은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의 미감을 나쁜 쪽으로 자극합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서 이 아파트는 검은 어둠에 둘러싸여 웅장한 산의 모습을 닮아있습니다. 그 웅장한 ‘산’의 모습 밑에는 석양 빛이 한줄기 마지막으로 남아 붉게 물들인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금씩 상승 전진하는 옥색 빛이 보입니다.

 

붉은 색과 옥색이 있다 하더라도 그 그림은 검은 색이 대부분입니다. 검은 색은 일반적으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미술의 역사 속에서도 검은 색은 같은 의미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검은 색이 들어간 그림을 회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검은 색이 많이 들어가 있다면 다른 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색만을 느끼고 우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그림을 보는 누군가는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우울한 그림이 아닙니다.

 

몇 몇의 사람들은 이 그림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고 그 희망의 에너지를 발견합니다. 붉은 색의 소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비록 아래에 있지만 상승 전진하고 있는 강한 선의 존재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평범하고 아름답지도 않은 우리의 일상 속 아파트가 웅장한 산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모든 것을 어둠속에서 빛나게 만들어 희망을 그려내고자 했던 화가의 바람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자꾸 보게 되면서 나는 망설여집니다. 이 그림을 <검은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지. 왜냐하면 그 그림에서 검은색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검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그를 다시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보게 합니다.

 

이상덕 그는 자신의 마음속의 바람에 흔들리며 작업을 한 화가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받아들이고 이미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자 하는 바람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그런 바람을 그림으로 가질 수 있는 화가였습니다.

■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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