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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화 〈37.500449°N /126.756274°E〉

허연화 〈37.500449°N /126.756274°E〉

허연화 Hur Yeonhwa

<37.500449°N /126.756274°E> 2014.06.11- 2014.6.16    

허연화웹자보1

오는 6월 16일부터 7월 6일까지 열리는 허연화의 ‘37.500449°N /126.756274°E’전은 지난 2013년 아트포럼리에서 운영한 2기 레지던시 프로젝트 사슴사냥 작가로 활동한 결실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전시가 진행될 장소, 아트포럼리의 위도와 경도를 이르는 전시명이자 작품의 제목으로 현재 존재하고 있는 아트포럼리를 기준으로 삼아 짧게는 15년 길게는, 6000년 이전에 있었을 건축물과 땅의 흔적들을 사실과 있음직한 허구로 순차적인 과거의 사건을 층층이 쌓는다. 점점 밑으로 내려갈수록 과거의 사건이 되고 그 시점에 세워졌을 건물의 한 단면을 재현한다. 전시명과 같은 작업명 ‘37.500449°N /126.756274°E ’는 4개의 건물 혹은 지형이 수직적인 배열을 가지며 건물의 제작-해체의 대한 탐구와 지점 위 외관 변화역사를 통해 거주지의 흔적들을 재조합하여 나타내고자 했다. 특정한 장소로써 언제나 변화하고 사라질 수 있는 ‘지금, 여기’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아 이미지로 기록함으로써 현실적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과거 건물은 인간의 의식주 중 하나로 보호의 역할이 컸지만 현재 부동산을 주축으로 하는 가계 경제 시스템에서는 집이란 중산층의 재산형성의 역할로 전세, 매매를 포함하여 현존하는 내 집, 상가, 건물은 일반적으로 가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게 중요하고 절대적인 개인소유의 건물은 절대 바뀌지 않는 한 지점 안에 세워져 있고 그 지점에서는 오래 전부터 많은 형태의 건물이 지어지고 사라졌다. 사람은 대지 위에 100년 이내의 짧은 기간을 거주하고 떠나지만 그 지점의 땅은 수만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 국가 간의 투쟁에서부터 개인 간 거래까지 소유 주체의 이동이 많았고 이러한 과정에서 한 지점의 장소에서는 수많은 건물들이 건설, 해체 되었다. 이 한 공간의 지점은 많은 형태의 건물의 토대가 되었고 변화하는 공간의 형태를 수로 세었을 때는 무한이 된다. …’(작가노트중에서) 허연화의 글을 보면 경쟁과 물질만능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가 선택한 삶의 태도, 관점의 전환을 알 수 있다. 한 지점의 장소에서 오랜 시간을 거치며 무수히 많은 삶들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안에 존재하는 나는 하나의 점과도 같이 이 시간과 장소에 잠시 머무를 뿐이라는 구도자적 접근방식이 그것이다. 작가가 대상에 대한 미분적 사유는 시간의 흐름을 추적한 고증적 태도로 형상화하려하나 사실 작가의 자율상상에 따른 대상으로 이미지화했다. 결국 위도와 경도로 구체화한 지점은 사유적 시점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위험사회’란 저서를 통해 서구를 중심으로 추구해온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실제로는 ‘위험사회’를 낳는다고 주장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1944-)에 따르면 위험사회의 위험은 인간의 행동과 태만의 반영이며, 고도로 발전된 생산력의 표현이라 언급했다. 위험사회의 특징은 본질적으로 결핍에 있고 충만한 생산미학이 갖는 노출된 위험을 다스리고자 정치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발전, 개발이 곧바로 채움이라는 밀도를 낳는 패턴은 패턴의 순환을 야기하며 채움은 결핍으로 전화한다. 가치의 패턴 또는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영역 또한 패턴화 순환한다. 패턴의 단순함은 사실 결핍과 충원이라는 반복으로 긴 역사의 층위를 나누어 왔다. 층위의 기록은 그저 기록의 단순함이 아니라 푸코가 ‘지금’의 관점에서 ‘과거’ 플라톤의 ‘향연’을 재해석해 내듯 과거부터 존재했던 이 위치는 현재를 위한 과거로 실재하고 있다. 허연화에게 작업의 기본적인 출발은 위험사회의 결핍체로 물질 운동의 지속 가능을 위한 근원 열량으로 작동했다고 보여 진다. 본래 건축물을 필요로 했던 목적론적 행위가 갖는 본연의 원형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구조인류학의 관점을 토대로 인간이 시대와 장소에 관계없는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합리적 규정을 세우고 나면 목적론적 행위에 대한 작가적 가치판단의 소통의 기반을 갖출 수 있다. 작가는 근대에 들어와 빚어지고 있는 건축주, 건축가, 자본의 삼위일체의 총아로 생산된 건축 물질을 통해 건축, 미의 원형을 자율사고 안에서 이미지적으로 점검하고 근대의 도구적 합리성이 낳는 자본의 권력에의 의지, 폭력적 나아감이 갖는 근대의 근대성을 해체하고 복기하고자 하고 있다. 위도와 경도로 특정지은 위치를 통해 사람의 역사를 되짚어 내는 것은 현 시기에 우리 사회에서 수장된 결핍의 깊이를 성찰적으로 측정해 보고자하는 의도로 먼저 인식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작가가 처음 분해를 시도하는 아트포럼리도 근대사회가 지향했던 이성과 근대건축의 한계가 존재하며 그럼에도 열린공간을 지향하며 형상화된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속에서 이 지점의 역사를 자율상상하며 근대가 갖는 의미와 순간이라는 역사를 작가 자신의 미감으로 재건축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줄 내용의 사유적 음미에 더해 미적 추적이 이후에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궁금함으로 남는다.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아트디렉터_이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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