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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원<모순의 탑, 이해의탑 >

오종원 Oh jong won

<모순의 탑, 이해의탑 >

2012.10.16(sat)-10.29(mon)

 

 

모순의 탑, 이해의 탑

그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몸이 모순과 이해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오종원의 종이로 쌓아올린 탑이 바로 그것입니다.

28살 청춘,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그는 현실이 자신을 무의 세계로 밀어내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에 대한 저항이 이 탑들을 쌓게 만들었습니다.

 

사라짐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고 슬픈 것입니다. 먼 옛날, 여기서 먼 나라의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조차 그 사라짐을 애달파하며 절대 사라질 수 없는 것을 대체물로 만들어내었지요. 그것이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입니다. 하나의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인간을 압도하는 높이의 이 구조물은 몇 천 년이 지나도, 만든자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또 다른 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 아주 먼 곳으로 이주되었을 지라도,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습니다. 아니 인간과 하늘을 연결할 수 있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오종원의 재료는 약간의 움직임과 살짝 부는 바람에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종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특별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흔하디흔한 복사지가 그 재료입니다. 모든 것이 언젠가는 스러져 없어지지만, 이것만큼 보는 순간 그러한 운명을 바로 느낄 수 있는 재료도 드물 것입니다.

‘약해짐을 극복’하기 위해 순수한 의지의 탑을 쌓고 있기는 하나 미약한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보면 종이로 쌓아올린 그의 탑은 그가 ‘질투’하고 있는, ‘동경’하고 있는 그 위압적인 구조들조차도 똑같은 운명이며, 언젠가는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하나의 쌓아올림은 단숨에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일 년이 넘는 시간을 탑의 기초가 되는 큐브를 자르고 붙이고 쌓아가는 단순한 노동을 반복하면서, 그는 이 종이들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종이들의 빛바램에서 시간의 퇴적층을 구별하고 미세한 색의 차이들도 집어내며 점 점 더 그것을 깊숙이 보게 됩니다. 흔한 종이가 아니라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종이 큐브들은 뭔가 더 단단한 것으로 변한 것처럼 보입니다.

전시 공간에서 종이큐브로 이루어진 탑들은 우뚝 솟아있는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합니다. 마치 위에서 아래로 우리를 내려다보듯이 그렇게 서 있습니다. 그 위압적인 내려다봄은 자신을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 소리치는 듯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종이일 지라도 자신을 멸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고, 당신들은 나를 이렇게 올려다보기만 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그 존재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아마 그 어떤 사람도 그 명령을 간단히 무시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그의 선택의 이유와 결과의 양상은 모순적입니다. 여기서는 나의 내세움과 타인의 내세움이 충돌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운명으로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세워짐을 강렬히 원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라지는 것이라고 머리로 아무리 이야기해도 가슴은 지금 여기서 우뚝 솟고 싶은 것을 그는 경험합니다. 모순의 경험은 이제 나와 너의 구별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자신의 그것만큼 그들의 열망도 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더 큰 혼란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순으로 쌓여진 탑은 나만이 아니라 너의 존재를 이해하게 된 순간을 기억하는 기념비라는 확신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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