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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덕 〈Alterspace: Project georges〉 김태덕 김태덕 김태덕 김태덕 〈Alterspace: Project georges〉 김태덕

김태덕 〈Alterspace: Project georges〉

 

과거부터 시각 이미지는 지하 무덤, 교회의 제단, 사회 최상류층만 출입이 가능했던 수집품실, 미술품 자유 시장, 공공 미술관 등 다양한 공간을 경유하며 제작되고 소개되어왔는데요. 동시대에는 흰 벽을 사용한 화이트큐브 공간의 전시장이나, 이와 대조적으로 경직된 화이트큐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과 함께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작품들이 전시되곤 하지요. 또한 시각 예술은 전시되는 장소적 특성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읽혀지는데요. 이번 전시는 작품의 주제와 전시 공간의 의미는 뒤로하고, 창작자와 감상자가 느낄 수 있는 예술 체험의 공통적 특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초점을 두고 출발했답니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Alterspace: project georges》 전시를 준비한 김태덕 작가는 예술에서의 공통적인 고유한 경험은 유희라고 꼽았습니다. 이 예술적 즐거움은 미술 관련 전공자가 아니었던 작가가 이 길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이기도한데요. 작가는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에서, 라스코 동굴에 재현된 시각 이미지에 대해 “예술의 본질은 유희의 한 형태이다.” 라고 제시한 대목에 공감하며, 동굴의 이미지에서 드러난 원시적 유희를 이번 전시를 통해 본인 스스로와 관람객 모두가 경험하길 바란다고 언급했답니다.

 

큐레이터: 어떻게 놀면 되나요?

작가: 벽에 낙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왕이면 바타이유가 얘기하던 위반과 금기도 건드려봐요. 그래서 왠지 손대면 안되고, 항상 깨끗하게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시장의 벽에 낙서를 해보는 거죠. 그대로 현대판의라스코 동굴 만들어봐요. 작가가 벽에 손을 대면 벽은 다시 일반인은 건드리면 되는 금기가 되어버리잖아요. 그러니 금기도 위반해 보는 거죠. 관객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낙서를 하게 전시장의 벽이라는 개념을 허무는 거에요. 관객이, 어설픈 참여형 전시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체가 창작자가 되고, 관객의 낙서가 작품이 되어 그대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없는 그런 전시를 만들어봐요.

 전시 관련 문서도 관제 형식의 기존의 글쓰기 방식을 탈피해보면 좋겠어요. 우리의 일상에 너무도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이건 이래야 라는 관념으로부터 탈피하는 새로운 시도를 이번 전시에서 바닥부터 엎어봤으면 해요. 마찬가지로 전시 홍보물의 이미지는 제가 손글씨로 만들면 좋겠어요. 컴퓨터의 딱딱하고 메마른 글씨, 규격에 맞춰 칼로 자른 듯한 직선이 아니라 자유로운 흔들림과 움직임으로 가득한 곡선의 이미지를 만들면 좋겠어요.

 

작가의 인터뷰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이번 전시의 작품, 전시 형태, 전시 서문, 디자인 등은 기존의 관습적인 형태와 관념에서 벗어나 예술가, 작품, 전시 공간, 기획자, 관람자 모두가 예술에 내재된 즐거움을 찾아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어요. 이번 전시의 놀이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은 바로 규칙 일탈이에요. 작가에게 영감을 준 조르주의 개념으로 달리 말하면 금기를 위반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번 전시는 일반적으로 작가가 미리 창작한 작품을 벽면에 설치한 형태가 아니랍니다. 그저 노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어요. 전시장의 벽은 원래 전시가 끝나면 다시 칠해지고 새로운 벽으로 바뀌어요. 이는 애초에 전시장이 영구성도 보존성도 없다는 것을 뜻하지요. 이런 맥락에서 저희는 관람자들이 기존에 접근이 불가했던 벽을 창작의 영역으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어요. 그리고 유일한 창작의 주인공인 작가의 역할을 관람객과 함께 공유하려고 해요.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자는 작가가 비치해 놓은 다양한 미술 재료로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든 공간에 자유롭게 낙서 내지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이러한 예술적 놀이가 철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어요. 예술은 생존에 필요한 여러 행위와 비교해 볼 때 유용성의 가치와는 반대되는 활동 중 하나로 인식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영구성과 보존성에 집착하지 않고 행위와 사라짐이 반복되는 자율적 놀이를 통해 체득하는 원초적인 재미는, 인간을 가장 자유롭고 충일한 위치로 돌입하게 만들어요. 유희는 곧 인간에게 충만한 에너지, 우연과 본능에 의한 질서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현존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답니다. 무지개를 보면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고, 눈밭을 보면 발자국을 남기고 싶듯, 이번 《Alterspace: project georges》 전시를 예술의 자율적 행위의 장으로서 마주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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