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작(三作)〉
■ 전 시 명 : 삼작(三作)
■ 작 가 명 : 이능재, 선무, 조은용, 박상덕, 김준서
■ 전 시 기 간 : 2020. 11. 05. (목) – 11. 27. (금)
■ 장 소 : 디포그
■ 문 의 : artforum.co.kr / T.032_666_5858
■ 기 획 :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 아트디렉터 : 이훈희
■ 큐 레 이 터 : 조은영,유상아
*전시 관람은 예약제로 이루어 집니다.
아트포럼리의 또 다른 전시장소인 ‘디포그’는 현재 담당자가 항상 상주해 있지 않습니다. 전시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은 아트포럼리 번호로 예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관람시간 : 월-금 (10:00~18:00)
<삼작>관람 예약 문의 : 032)666-5858
■전시 서문
삼작 三作, 삼정동 거버넌스의 활로를 개척하다.
아트포럼리 큐레이터 조은영
- 삼정 르네상스의 원동력 – 아트포럼리와 디포그
800년 전, 고려 말의 시성 (詩聖) 이규보 (1168~1241)는 부천의 옛 모습을 보며 “사방으로 물이 푸르고 넓어 섬 가운데에 들어왔는가를 의심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서해조수가 한강하구를 통해 밀려들어오는 까닭에, 예부터 부천 사람들의 삶은 늘 물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 부침이 심하지 않았던 부천에는 물과 연관된 옛 지명의 뜻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곳 삼정 (三井) 또한 부천 선인들의 오랜 체취를 머금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라 하겠다.
셋이라는 삼 (三)은 고대에 ‘사’ 혹은 ‘시’로 불리었는데, 이렇듯 삼정의 땅이름은 ‘세 개의 우물’을 뜻하는 ‘시우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서쪽의 바닷물을 통해 김포·부평과 맞닿아 있었던 삼정은 1980년대에 도시계획이 진행되면서 대규모 공단지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공장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열병합발전소와 쓰레기 소각장도 건립되면서, 어느새 삼정은 부천의 대표적인 공해지역이 되어버렸다. 영세 제조업체들과 환경기피시설로 인해 주거 환경이 열악할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교육·문화·주민편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긴 시간 상대적인 소외감에 시달려왔다. 다시 말해 오늘날 삼정은 도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발전과제를 안고 있다.
삼정이 당면하고 있는 현안은 경제성장의 결과로 나타난 패러다임의 변화와도 결부되어 있다. 2000년대 이후 부천의 도시경제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뀌는 탈공업화 현상을 겪었기 때문이다. 산업의 전환과 도시의 확장, 재개발의 유예로 생겨난 틈새에서, 삼정에 위치한 다수의 생산 시설들은 점차 아무도 돌보지 않고 찾지 않는 유휴산업시설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휴산업시설들은 ‘도시의 쇠퇴’를 증명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이 공간들은 시대적 역사성을 내포한 귀중한 자원으로서, 오히려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용지로 인식되고 있다. 가령 삼정동 소각장은 지난 2018년, 복합문화예술공간인 ‘부천아트벙커b39’로 재생됨으로써 유휴지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유휴산업시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업은 해당 지역을 둘러싼 여러 참여주체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의욕이 선행되어야만 보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달성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안공간 아트포럼리가 부천의 유일한 기획 전시 공간으로서 지난 10여 년 간 걸어온 행보는 대단히 고무적이다. 아트포럼리는 문화예술과 관련하여 제기되어왔던 지역에서의 오랜 요구에 응답하고, 지역성을 함축한 예술을 형성하고자 그간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던 것이다. 아트포럼리의 이러한 행적은 2012년, 삼정동에 위치한 기업 디포그와 함께 레지던시 ‘사슴사냥’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한층 체계화되었다. 수백 년 전 메디치 家의 메세나 활동으로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듯이, 중앙 시스템의 결핍이라는 녹록지 않은 여건에서도 아트포럼리와 디포그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메세나 정신을 실천하며 지역민들의 예술 향유에 기여한 것이다.
- 소소한 마주침들 – 삼정 예술장을 창출하는 원천이 되기를 꿈꾸며.
‘사슴사냥’ 레지던시는 비록 2018년을 끝으로 마무리되었으나, 2021년 아트포럼리는 민간에서 진행되었던 이 프로그램의 한계를 알리는 동시에, ‘공공 레지던시’가 지역에 새로이 구축될 수 있도록 다시금 박차를 가하려 한다. 여기서 새롭게 설정된 목표점이란 ‘사슴사냥’을 이끌던 작가들을 주축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삼정동 舊 공단 지역에 일종의 ‘예술가촌’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때 핵심은 네트워크, 즉 마주침이다. 네트워크는 예술가들이 제도 밖에서 삶을 유지하고, 또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의존하는 핵심 수단이다. 예술가들은 각자의 작업실에서, 식사와 술자리에서 일상적이고 우연한 만남을 이어가며 그들의 삶과 예술의 초석이 되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간다. 그리고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활동이 도시를 구원하리라’는 미명 아래 예술의 역할이 도시 정책에서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현대의 도시 정부가 예술가들의 네트워크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하겠다.
흥미로운 점은 예술가들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사회에서 공유되는 다양한 문화적 환경 즉 ‘공통재 (커먼즈, commons)’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커먼즈란 시장을 통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공동의 자원을 뜻하며, 비시장적인 방식을 통해 삶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대안적인 삶의 양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집합적인 활동을 거쳐 커먼즈를 생성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가시적인 생산자는 바로 도시 예술가들이다.
지금 여기, 아트포럼리와 디포그를 주축으로 모인 다섯 예술가들 (김준서, 박상덕, 선무, 이능재, 조은용) 또한 소소하고 일상적인 마주침을 거듭한 끝에, 삼정동의 새로운 커먼즈를 생산한다는 하나의 뜻을 가지고 결집하였다. 궁극적인 목표는 부천의 역사적·사회적 상징성이 축적된 삼정을 문화적 가능성을 지닌 공간으로 새롭게 구현하고, 예술가와 삼정동 공장들의 네트워크를 견실하게 갖추는 것이다. 다만 팬데믹의 공포가 엄습해오는 상황에서 이 네트워크가 지역 내에 커다란 공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한층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정립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이 같은 코로나의 난관을 딛고, 우선 프로젝트의 인프라를 확충하는 차원에서 본 전시를 통해 ‘삼작’의 노선과 방침을 정식으로 표명하려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삼정동 프로젝트는 ‘문래 창작촌’의 사례와 다소 닮은 구석이 있다. 문래동의 경우 역시 열악한 폐공간을 중심으로 작가들이 자생적인 네트워크를 이루고, 이렇게 형성된 예술공단을 통해 지역 공동체와 긴밀하게 융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낙후해 가는 환경의 빈틈에 스며들어 그곳이 내포한 잠재력을 발견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두 프로젝트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디포그와 함께 성취했던 메세나적인 문화 정신과 효과를 더욱 배가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는 제조업을 토대로 하는 삼정동 내 “기업들”을 참여 주체로 적극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보 측면에서 메세나가 갖는 효과는 이미 광범위하게 입증되고 있다. 문화 활동에 기여함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사회 계층에게 널리 알리고, 직원들에게도 애사심과 소속감을 더욱 공고히 하였던 사례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메세나가 독창적인 기업 커뮤니케이션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바, 본 프로젝트는 노동의 결과물이 예술에 활용될 수 있음을 참여 기업들과 함께 증명하여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삼정동의 ‘삼 (三’)과 세 가지 참여 주체들, 즉 [아트포럼리+기업+지역]의 ‘창작 행위 (作’)를 결합한 ‘三作’이라는 프로젝트 명칭이 바로 이러한 의도를 드러낸다.
이처럼 삼작 프로젝트는 작가 – 기업 – 지역이 함께 즐기고 교류함으로써 얻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쇠퇴해가는 삼정동에서 삶의 창조성을 발산하고 실현할 것이다. 그리고 네트워크를 통해 공통의 부, 커먼즈를 창출할 때, 예술은 제도적 환경에 갇힌 엘리트적 전유물이 아니라 변화를 꿈꾸는 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로 승화된다. 본 프로젝트가 다원적 주체들의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커뮤니티 아트’와 그것의 터전을 마련한 ‘문화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이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하겠다.
특히 각 지자체들이 ‘문화 도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오늘날, 문화민주주의는 이 시대의 필수적인 정책 이념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삼작 프로젝트는 ‘문화 도시 부천’에 커다란 자양분이 될 것으로 본다. 주지하다시피 부천은 다른 도시들보다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문화 도시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선점해왔다. 공업도시 기반이 점차 약화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도시 발전의 새로운 전략으로 문화 도시가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중심 일변도의 정책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부천의 문화예술이 정치에 종속되어 있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부천시에서는 정부와 민간단체, 시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지역문화 거버넌스’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삼작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목표와 명확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번 삼작 프로젝트는 부천이 바로 필요로 하였던 당면 과업을 떠맡은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삼정동이 갖는 역사적 상징성뿐만 아니라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방치된 산업 시설물을 재생하고, 이 모든 절차를 참여 주체들과의 협력 속에서 완성하여 시민의 진정한 문화 정체성을 고양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이토록 중대한 지역적 과제를 떠안고 있는 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향후 5년간 추진될 계획이며, 예술가와 지역, 공단이 삼작의 본래 의도에 걸맞은 거버넌스적 절차와 합의를 도출하여, 삼정동 내에 진정한 지역사회 예술장이 창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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