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태 <개울가의 나한들>
■ 전 시 명 : 개울가의 나한들
■ 작 가 명: 박은태
■ 전시 기간: 2024.09.09(월) – 2024.10.10(목)
*월-토 10:00-18:00 / 일요일 휴관
■ 오프닝 행사: 작가와의 대화
2024.09.09(월) 15:00-17:00
진행 | 이훈희(대안공간아트포럼리 디렉터), 정윤희(비평그룹 시각)
■ 장소: 경기도 부천시 조마루로 105번길 8-73 대안공간아트포럼리 1F
■ 문의 : artforum.co.kr / artforumrhee@gmail.com T.82(0)32_666_5858
■ 주최/주관 : 대안공간아트포럼리
■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른 한편으로, 해방의 시간성
정윤희(비평그룹 시각)
AI(Artificial Intelligence), 빅데이터로 표상되는 디지털 신기술 시대에 노동과 관계한 문제는 노동의 효율성이 향상되면서 발생하는 실업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신기술 교육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담론이 지배적이다. 신기술에 의한 노동 관계의 형식과 방법 체계의 변화는 시·공간의 지각과 정동을 새롭게 변화시키지만, 알고리즘에 기반한 자동화된 의사 결정은 사회적 차별을 심화하거나. 기업이 보안 강화와 시간 관리 등 업무 효율성을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도입하는 업무용 어플리케이션이 새로운 형식의 노동자 감시와 노동자의 시간 권리를 파편화시키는데 활용된다는 사실은 은폐된다. 1936년 찰리 채플린(Sir Charlie Chaplin)의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노동자가 대량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자동화 시스템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기계의 움직임에 따라 정해진 동작과 시간에 맞춰 반복적으로 쉴 틈 없이 나사를 조이다가 결국 인간성을 상실한 채 톱니바퀴 사이로 끌려 들어가는 장면은 최근 생산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켜 생산을 관리하던 노동자를 사물로 인식해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건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기술만능주의가, 물신주의가 노동자를 소외시키고 존엄성을 파괴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박은태 작가는 변하지 않는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구조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삶, 관계, 공간의 단면을 표상하는 인물 중심의 리얼리즘 회화로 증언해왔다. 한국 미술 계보에서 노동 문제에 천착한 대표적인 ‘노동미술가’로 호명되는 작가의 시선은 일상에서 수없이 만나는 해고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여성 노동자, 노인노동자, 노숙자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당하는 인간에게 향한다. 공장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87 민주화 운동’ 시기에 대학을 다니고, 90년 민미협의 ‘노동미술위원회’를 이끌었던 작가에게 노동 운동 현장에서 필요한 걸개 그림을 그리거나 투쟁 현장에서 미술 전시장을 여는 것은 작가의 삶에 베어진 일상적인 삶의 방식일 것이다.
박은태 작가의 회화는 동시대 리얼리즘의 예술의 다양한 표현 양식을 추구하기보다 주제의 상직적 표현, 인물과 사건 묘사로 노동 미술의 계급성과 전형성을 담보한다. 매체를 혼합하듯 인물과 개연성 있는 배경이나 텍스트를 배치하여 몽타주나 콜라주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 그림을 경험한 사람에게 작가가 목도한 현실의 문제를 명징하게 전달하고, 인간 존엄의 정동을 갖게 하고, 사실을 기억에 남기고, 움직이게 하고자 함일 것이다.
<개울가의 나한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흐르는 물과 바위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 배치한 노동자들을 ‘나한(羅漢)’으로 호명한다. ‘나한’은 부처로부터 불법을 지키고 중생을 구제하라는 임무를 위임받은 제자들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실존했던 수행자 이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정처 없이 떠밀려 가는 사람들’, 자본주의의 노동과정과 생산 관계에서 타자화될 수밖에 없는 ‘노동소외’된 노동자들을 ‘나한’으로 호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삶을 실현할 수 있는 ‘노동 해방’을 꿈꾸는 주체로서 노동자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인간은 노동으로 자기 삶을 실현하는 ‘유적 존재’인데 오로지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하게 되는 순간 노동은 무의미한 과정이 되며, 노동의 결과인 생산물이 자본가의 소유이기 때문에 생산물로부터 소외된다. 칼 맑스(Karl Heinrich Marx)는 “노동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활동을 통하여 자연과의 물질대사(Stoffwechsel)를 매개하고 규제하고 조절한다.”고 밝혔다. 노동자 스스로 능동적으로 신체를 움직여 자연 간의 현실적인 상호작용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맥락에서 96년작 ‘염원<불멸의 나무>’는 땅에 묻힌 사과나무의 튼튼한 뿌리와 씨앗 등 생태적 기표를 차용해 대량 해고와 불안정 노동을 야기하는 ‘경제물신주의’를 바로 잡는 주체적인 노동자의 표상을 발견할 수 있다.
<개울가의 나한들>의 ‘나한’으로 호명된 노동자의 몸의 일부를 바위나 물과 중첩되어 보이도록 붉은 선으로 묘사한다. 바위 표면의 균열, 물의 흐름과 인물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마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상태로 보이기도 한다. ‘개울’의 기표는 물이 흐르고 이어지고 돌아가는 물질적 특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기의한다. 나한들의 기억이 모인 개울은 강으로 바다로 흐르듯 인간 자신의 내면의 성찰과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과의 관계, 호혜성의 열린 관계를 노정하는 공간이다.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시간성’은 작가가 다뤄온 인간 소외 현상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림 전반에 흐르듯 펼쳐진 ‘선’을 고대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Ἀναξίμανδρος)가 존재의 생성과 소멸이 한정된 것으로 ‘시간’의 기원을 밝힌 것의 연속 선상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 극대화와 경제성장을 추구하기 위하여 노동자 착취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서 ‘시간’을 계획했다. 자본가는 시간의 지배자이고 시계는 일상 전부를 자본이 잠식하도록 패권을 옹호하는 도구다. 무한경쟁을 강제하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하고 조밀하게 구조화된 그물망에 걸린, ‘프롤레타리아’의 희생은 신자유주의 노동 시장을 확대하고 불평등을 무한하게 재생산한다. 실상 ‘자연의 시간성’은 간주되지 않는다. 그저 자연이 동식물 자원이나 광물 자원을 활용한 상품 생산을 위하여 약탈당하는 재료로 취급할 뿐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에 직면한 요즘 사회 전반에 걸쳐 자연의 권리, 자연과의 관계의 평등한 관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지배와 착취의 질서를 규정하는 ‘시간’ 즉 우리가 지각하는 공통의 세계를 수량화할 수 있는 직선의 ‘시간’이 무너지기를 기대해본다. 그래서 인간 본연과 자연의 생성과 소멸과 관계하며 생명의 역동성이 살아있는 다채로운 리듬으로 이루어지는 ‘자연의 시간성’ 복원이 이루어져 인간-비인간이 자신을 실현하며 공존할 수 있다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착취의 부정의에 예속되는 자들이 겪는 가장 근본적인 부정의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부정의, 시간성 분배의 부정의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불평등을 무한하게 재생산하는 ‘시간성’ 자체를 투쟁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주문한다. 능동적 인간이 배치할 수 있는 ‘시간 있는 자들의 시간’이 있다면, 그 반대에는 허구의 세계에서도 시간을 갖지 못하는 위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직선으로 이어진 인과론적 시간성과는 다른 ‘순간’, 예술과 정치에서 발현될 수 있는 새로운 시간성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울가의 나한들>을 통해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배제되는 시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 시간의 나눔 자체를 재편하는 것, 돌봄과 호혜의 관계를 바탕으로 재생산된 시간성 ‘해방의 시간성’을 연결해보았다. 더 나아가 자본세(Capitalocene·) 위기와 젠더의 불균형, 인간과 자연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담론으로 해석을 확장해 볼 수도 있겠다.
박은태(b.1961)
1992 홍익대학교 회화과
개인전
2020천근의 삶, 인디프레스, 서울
2018 늙은기계 – 두개의 시선, 8회 개인전, 세종문화회관미술관 광화랑
2017 고암이응노 미술상 수상기념전, 고암이응노 생가기념관
2015 기다리는 사람들, 광화랑,서울
2012 가라뫼 사람들 – 새마을 운동의 명암, 광화랑, 서울
2010 부자되셨나요 떠나셨나요? – 상품광고와 일상의 삶, 평화박물관 스페이스 99, 서울
2008 어머니 – 한 여인의 발자취, 고양어울림미술관, 고양/광화랑, 서울
2005 초라한 사람들2, 혜화역 전시장 ,서울
2000 초라한 사람들, 서울역 문화관, 서울
주요 단체전 1991~ 2024 (140여회)
2024 내 이웃의 얼굴_사람전, 경기아트 갤러리
2023 현실 미술의 순간전, 동덕아트 갤러리
삶 생명_사람전, 경기아트 갤러리
동학농민 혁명 기념전,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어제와 오늘, 문화공간 역, 춘천
노동 미술전, 울산 노동 역사관, 울산
2022 다면체 미로 속의 진동,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광주
노동미술전,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전태일 기념관, 서울
그림의 새로운 시작, 삼육빌딩, 서울
웨이팅 포 더 선, 문화비축기지 T5, 서울
아시아 그리고 쌀 전, 전북예술회관 ,전북 전주
2021 경기집중작가전 – 광대하게 느리게, 경기도 미술관
2020 제주 4.3 평화 미술제, 제주 4.3 평화 기념관, 제주
노동미술전, 울산문화예술회관, 부산민주공원전시장
2019 에이징 월드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
가능성의 기술 – 생생화화, 아람미술관, 고양시
강과 사람전, 아트스페이스 광교, 수원
아시아 그리고 쌀 전, 전북예술회관 ,전북 전주
2018 경기천년 아카이브전 –지금, 경기상상 캔버스, 수원
촛불혁명과 평화의 창,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관, 광주, 창원, 부산 순회전
서남동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민중미술과 영성,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서울
외 다수
수상
제3회 고암 이응노 미술상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평화박물관
레지던시
2018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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