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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유 -공연히숲을헤쳐서뱀을일구더니

하자유 -공연히숲을헤쳐서뱀을일구더니

■ 전 시 명 : 공연히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구더니

■ 작 가 명: 하자유

■ 전시 기간: 2024.09.23(월) – 2024.10.04(금)

*월-토 10:00-18:00 / 일요일 휴관

■ 장소: 경기도 부천시 조마루로 105번길 8-73 대안공간아트포럼리 1F

■ 문의 : artforum.co.kr / artforumrhee@gmail.com T.82(0)32-666-5858

✺ 이 전시는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이 지원하는 “2024 차세대전문예술활동지원 <청년예술가S>”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전시 서문

어떤 작품은 우리를 아주 멀리 데려가지만, 하자유의 작품은 우리를 가까운 곳에 오래 머물게 한다. 하자유의 주된 모티브인 ‘흔적’ 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사라져가는 공간과 순간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옮긴 유화 작업은 대상을 화면 위에 흔적으로 담아내는 반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다수의 판화 작업은 목판 위에 흔적을 새기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장면의 서정성과 대상의 시각적 재현에 집중한 페인팅과 달리 하자유의 판화는 촉각적 경험을 통한 체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전시 제목인 《공연히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구더니》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다. 이는 ‘긁어 부스럼’의 북한 속담으로, 공연히 숲을 쑤셔 뱀을 나오게 해 위험에 빠뜨린다는 말이다.

나는 그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구어내는 꿋꿋하고도 어이없는 존재를 어렴풋이 느꼈다. 그 심연의 동력을 파헤쳐 보고 싶어졌다. 구태여 뱀을 일구는 자는 무엇 때문에 일구는가, 가만히 내버려두면 될 것을···. 아름다움을 목격했다는 사실로 숲을 파헤쳐 뱀을 일구어가는 이들이 존재하기에 뱀과 같이 꿈틀거리는 수많은 생명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는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긁어 부스럼은 예술가들이 가장 잘 해내는 것이며 그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한 시간이면 등반할 숲을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헤매는 사람처럼 오르기에 목적을 두지 않는 무위, 우연에 맡겨진 거닐기. 다가오는 이미지와 감상에 스스로를 내맡긴 채 흔적으로 남길 순간의 광경을 음미하는. 이것저것 둘러보고 들춰보는 산책자의 태도가 곧 하자유가 말하는 예술가적 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페인팅이 한 발짝 멀리서 숲을 바라본 것이라면 판화 , 작업은 눈 덮인 숲 한복판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하얀 땅 위에 찍은 불규칙한 발자국이며 매끄러운 공백의 나무판에 새긴 거친 흔적이다. 우리는 작가가 구태여 새겨둔 발자국을 뒤따라 걷는 사람이 되어 기꺼이 함께 한가로이 헤매기도 하며, 그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서게 했던 얼굴과 장면을, 순간을 함께 되짚어보게 될 것이다. 하자유가 마음껏 헤집어 놓은 흔적을 발견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 정우연 큐레이터

 

작가노트

어느새 짐들로 빼곡히 들어찬 작업실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되곤 했다. 당장 하고 있는 이 행위들이 때로는 기능을 알 수 없어 나아갈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의미를 망각한 채 거대한 벽을 마주한 듯 했다. 한동안 그 앞에 정체되어 있다가 하는 수 없이 시작이라도 하자며 6년 전의 나처럼 나무 판을 파기 시작했다. 칼날 위로 나무의 표피가 부스러기가 되어 떨어졌다. 책상 모서리에, 카펫 위에, 바닥으로 하염 없이 떨어지다가 이내 쌓여갔다. 나는 그것들을 보며 이 모든 것은 긁어 부스럼이라고 중얼거렸다. 여전히 나는 내가 발견하고 목격한 어떠한 주파수를 감각하여 시각적 행위로 나의 몸을 움직여 기록한다는 것에 아직 해야 할 이유를 구태여 찾아내야만 했다.

평소처럼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긁어 부스럼’ 이라고 두드렸다. ‘공연히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구더니’ 는 그렇게 마주하게 된 문장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부정적인 시선들로 가득한 숲을 헤쳐서 뱀을 일구어내는 하나의 꿋꿋하고도 어이없는 존재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 존재에게서 심연의 동력을 파헤쳐 보고 싶어졌다. 구태여 뱀을 일구는 자는 무엇 때문에 일구는가, 가만히 내버려두면 될 것을 굳이 복잡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나는 아름다움을 목격한 죄로 끝없이 수라갯벌의 살아있는 현장을 기록한다는 활동가의 말을 떠올렸다. 과거에 수많은 생명이 가득했던 갯벌의 아름다움을 목격했던 이는, 모든 것이 막힌 채 가치가 공유되지 않는 오늘도 굳이 굳이 숲을 파헤쳐 일구어내는 이다. 구태여 파헤친 숲이 존재하기에 뱀과 같이 꿈틀거리는 수많은 생명들의 존재를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나 그 이면에 파여진 조각과 흔적으로 파생되는 것들이 있다. 흩날리고 사라져버리는 듯한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목격하는 이는 흔적이 지나간 자리를 볼 것이다. 셜록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남들이 보지 못한 작은 단서를 무시하지 않음에서 시작한다. 결국에는 짐이 될 것이라며 긁어 부스럼이라며 현실에 자주 절망하고 비관하게 됨에도 어떠한 흔적을 주목하며 쌓아가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역량을 도리어 발견하게 되는 지점이 된다. 나는 현 사회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당장 명료화되지 않은 하루를, 어떠한 발걸음을 이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끝내어 멈추지 못하며 당장의 유토피아가
펼쳐지지 않음을 인지하면서도 이 세상에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을 감수하여 삶이라는 판을 긁어내는 생명들이 들끓고 있다.

더위에 못 이겨 선풍기를 틀었다. 내가 파헤쳐 놓은 톱밥이 미풍의 바람에도 작업실 곳곳으로 흩어졌다. 켜켜이 쌓이다가 이내 떼어진 표면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흔적들로 파생되는 다른 가능성을 보려고 애쓰는 또 하나의 흔적으로 존재했다. 이들은 다시 벽 앞에 서 있다. 이들의 존재가 끝끝내 공연히 숲을 헤쳐 대지의 일원으로, 녹색을 품은 줄기로, 저 밑에 도달하는 뿌리를 감각할 수 있는 존재로 일구어낼 것이라는 긁어 부스럼을 말하고 싶었다. 아주 작은 부스럼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 작가 하자유(b.1997)는 사라져가거나 새롭게 마주하는 것들을 유화와 목판에 흔적으로 남기며 작업한다. 북경 중앙미술학원 판화과를 졸업하였고, 2023년 개인전 《흔적이 풍경이 될 때》(미루갤러리, 서울), 《흘러흘러 어디로 가나》(예술공간 광명시작, 광명)을 시작으로 2023, 2024 부천아트페어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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