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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레지던시 보고전 서유진 레지던시 보고전 서유진 레지던시 보고전 서유진 레지던시 보고전 서유진 레지던시 보고전

서유진 레지던시 보고전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레지던시 보고전

서유진 <우리는 서로의 안중이 안중에도 없다>

2018.03.23-04.13

@대안공간아트포럼리

 

당신들의 안중에도 없는 것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꽤나 혼란스러운 일이다. 그 삶이 작가로서의 삶일 경우에 이 혼란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일 것 같다. 이를테면 작가로서의 삶은 다음과 같은 자문과 심문에 시달린다. 나는 작가로서 어떤 질문을 가져야 하는가. 사회적인 발언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민감도에 비추어 과장된 표현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작업해야 하는가. 예술가가 사회와 관계 맺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것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사실이기는 한가. 누군가에게 관람자 자신의 이야기로도 다가올 수 있는 작업인가, 오직 창작하는 나 자신에게 수렴되는 이야기인가. 내가 언술 한 일련의 작업과정이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에 부응하는가.

 

서유진의 <우리는 서로의 안중이 안중에도 없다>는 대안공간 아트포럼리에서의 10개월 레지던시를 마무리하며 열린 전시다. 전시에는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의 작품이 저마다의 문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첫 문단인 <illuminate>는 다음의 레이어로 구성된다. 작가는 특정한 사건이라고 일컬어질 수 없을 만한 일련의 불특정 기억들을 비정형의 점토로 형상화했다. 전자회로 장치를 이용한 조명이 작동 가능한 시간에만 한정되어 점토는 다시 캔버스 위로 장소를 이동한다. 전자회로 장치는 수조에 담겨있으며, 시간이 지나 수조의 물이 증발되면 더 이상 조명이 작동되지 않는 방식이다.

 

온통 스크래치로 가득한 거울이 설치된 암실에는 비정형의 점토, 점토가 그려진 캔버스, 조명의 수명을 담당하는 회로장치, 작업과정을 담은 영상이 하나의 ‘비추기illuminate’ 행위로 작동하고 있었다. 암실의 전체적인 조명은 잦은 횟수로 점멸하는데, 작가가 언급했던 불특정 기억들을 안중에 담으려는 관람자의 시각을 방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방해는 작가가 주도권을 쥔 훼방이지만, 사실상 관람자가 타인의 기억이나 사건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발생한 훼방이다. 다시 말해 점멸하는 불빛이란 애초에 타인의 시선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illuminate>의 대상은 전시장에 놓인 관람자 자신이 되어버린다. 작가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이해하려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음”이라고 노트한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앞서 언급했던 작가가 할 수 있는 고민과 질문이 가 닿을 곳이 애초에 존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한계와도 상통한다.

 

<illuminate>_가변크기_캔버스에 아크릴, 점토, 회로장치, 조명4개, 거울시트지_단채널영상_2018

 

두 번째 문단은 <정리하기 나가기>라는 제목을 가진 폐기물이다. 서유진은 레지던시 기간 동안 발생시킨 쓰레기와 작품을 우레탄폼으로 한 데 얽어 놓았다. 작가가 한정된 기간 동안 머물며 제작한 작품은 끝내 장소를 가질 수 없는 물건들, 즉 폐기물이 되었다. 만들어진 쓰레기 만큼이나 의미와 역할을 찾지 못한 사물들은 그 복잡한 심경이나 부담에 비례해 부풀어 올랐고, 문을 벗어날 수 없는 크기의 부피로 커졌다. 작가는 그 부피를 절단 시켜 전시장에 들여놓았다. 이때 다시 작가는 자문한다. ‘작품에 대한 미련 없이 버리거나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 반성해야 하는 태도가 아닐까?’ 무언가를 창작하고, 창작한 것을 버리는 행위로써 다시 창작할 때조차 반복할 수밖에 없는 작가적 태도와 질문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 일련의 과정이 우레탄폼을 절단하는 것만큼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미루어 짐작된다.

 

<정리하기 나가기>_가변 크기_사진 9장_2018

 

<정리하기 나가기>_가변 크기_우레탄 폼, 작품, 쓰레기_2018

 

<정리하기 나가기>_단채널 영상_2분16초_2018

 

세 번째 문단은 전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판화 작업이다. 노끈으로 임시 설치된 건조망에 쉽게 비치고, 잘 찢어지고, 금세 구겨지는 화선지에 찍어낸 판화가 빼곡히 매달려 있다. <Instant Image>는 동일한 원판을 계속 음각 하며 1도에서 7도까지 동일 색상으로 판화를 찍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형태는 같지만 7도로 올라갈수록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한 번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그 다음 관람객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 이미지는 구름 같기도 하며, 개의 형상 같기도 하다. 작가는 저마다의 단단한 논리를 가진 예술(가)이라 하더라도 현실과 낙차가 큰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의심하며 비정형의 구름 이미지를 선택했다고 한다. 어쩌면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것은 비정형의 동일한 모양새를 그 깊이만 점층 시켜 무한히 찍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스턴트 이미지를 보는 사람의 안중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그 깊이를 어떻게 읽어내는지에 따라 그 이해의 폭이 다르다 할지라도, 사회에 대한 예술적 개입이란 애초에 구름처럼 쉬이 흩어지는 속성을 지닌 것일지도 모른다.

 

판화 프로젝트 룸 <Instant Image>_건조망 2개, 판화 작업대_2018

 

서유진은 이번 전시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질문들을 이전의 작업들에서 계속해왔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뤄야 했던 프로젝트에서도 그 이슈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작가가 해석하고, 창작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자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Instant Image>의 초기 구상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일전에 히로시마에서 원폭 버섯구름 이미지를 브로콜리의 형태로 수렴시키는 판화를 제작하고 싶었다고 한다. 히로시마와 같은 역사적 상흔이 짙은 곳에서, 작가란 원폭 버섯구름을 재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자기증명을 해야하는 존재일까? 서유진은 이를 빗겨갔다. ‘나는 브로콜리를 찍어냈을 뿐입니다. 당신이 오해한 거예요.’라고 말해보고 싶었다던 작가에게서 모종의 사회적 진정성에 대한 압박과 그 반대급부로 밀려오는 의도적 농담이 불가분의 고리로 작동하고 있었다. 버섯구름이 브로콜리가 될 수는 없지만 버섯구름을 브로콜리로 볼 수는 있다. 다만, 그 버섯구름의 이미지를 브로콜리로 보이게 한다는 것은 작가만 알고 있는 의도다. 그 의도는 작가 스스로에게 어떤 사회적 무게로부터의 이탈을 선사하는 동시에 그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자각을 동시에 부여한다.

 

서유진은 작가에게 들이밀어지는 윤리적 잣대를 수긍하기보다 오히려 자조하는 편을 택했다. 이것은 모종의 책무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과연 그 이슈들이 내 안중에 정말 있었던 것인지 엄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에 더 가깝다. 이번 전시 <우리는 서로의 안중이 안중에도 없다>는 이 엄밀한 염려들이 타자들의 안중에 닿을 수 있는지에 대한 포괄적 질문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그 모든 공공적 사건들이 누구의 안중에도 없다는 철저한 진실에 대해 조심스레 되물은 것이 아니었을까.

 

■박수지

 

 

 

전시 타이틀은 [우리는 서로의 안중이 안중에도 없다.]로 본인을 포함한 관객과 작가, 더 나아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얼마나 이해시키기 힘든가.’ 또 ‘이해시킬 의지마저 결여된 것은 아닌지.’ 등의 생각으로 작업한 결과물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보여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작품과 설명적인 장치를 늘어놓지만, 보는 사람의 인지를 방해시키거나, 관계를 쉽게 규정을 지으며 소통에 있어서 안일한 태도를 드러낼 생각이다.

<illuminate >는 50호 그림과 영상, 전자회로, 조명기, 점토조각들이 거울로 된 벽에 설치된 작업이다.

물병 속에 담겨져 있는 센서가 수면에 따라 조명장치를 제어하게 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깜빡이고 약해지게 된다. 작품을 보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전시 타이틀인 <우리는 서로의 안중이 안중에도 없다.>와 연관되어 있는데, 상대방의 이야기와 늘어놓는 것들을 주의 깊게 이해하려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음을 비춘다,

<정리하기 나가기>는 10개월간 대안공간 아트포럼리의 레지던시 공간에 있으면서 개인전 이후에 떠나야하는 감정을 담은 작업이다. 작업실에서 만들어낸 작품과 쓰레기는 조만간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짐이 되어버린다. 이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뭉쳐져 작업실의 문으로는 나가지 못하게 하지만 전시와 약속된 기간을 맞추기 위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껏 본인이 작품을 다루는 태도가 반영된 변형을 통해 전시장으로 가져오게 된다.

마지막으로 전시장에서 진행되는 판화 작업<Instant Image>는 관람객이 언제 어느 때 방문하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이미지는 달라진다. 작가가 실시간으로 판을 찍어내 제시하는 이미지와 그것을 보는 관란객의 관계를 순간적으로 규정짓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서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