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 초대전
‘이곳을 통과하는 방법들’
아트포럼리는 2026년 10월 28일부터 11월 30일까지 김유경 초대전 《이곳을 통과하는 방법들》
이번 전시는 시각예술 창작가·연구자·기획자 네트워크 프로젝트
〈2026 세포를다시조직하라〉의 두 번째 작가 전시로, 2025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해 온
김유경 작가가 도시의 생태하천을 관찰하며 탐색해 온 작업을 선보인다.
〈세포를다시조직하라〉는 공동학습(CoP), 연구자 워크숍, 현장 리서치를 통해 기후재난과 복합위기의 시대에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와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올해는 분단·경계·이주를 중심으로 지정학적·지경학적 위기와 기후재난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하고 있다.
김유경은 집에서 호수까지 이어지는 일상적인 산책길을 따라 물과 식생, 새와 동물, 펌프와 배수구, 정화장치와 슬러지 등 하천을 구성하는 다양한 존재와 시설을 기록한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듯한 도시의 물은 인공적인 장치에 의해 조절되고, 식물은 자라나는 동시에 관리와 제초의 대상이 되며, 물에서 분리된 퇴적물은 또 다른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자연이라 부르는 환경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제거되고 무엇이 남겨지는지 질문한다.
사진과 메모, 작은 회화로 축적된 관찰은 상류에서 하류로 이어지는 지도 형식으로 재구성된다. 작가의 지도는 장소를 축소해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물의 흐름과 물질의 이동, 생명과 관리 시설의 관계를 연결하면서 하나의 시선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환경의 여러 층위를 드러낸다. 여기에 대상의 형태와 색채를 변형하는 회화적 상상력과 유머가 더해지면서, 식물과 파이프, 슬러지와 동물은 고정된 기능이나 분류를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곳을 통과하는 방법들》은 자연과 인공, 보존과 제거를 단순한 대립으로 바라보는 대신, 서로 다른 존재와 물질이 각자의 조건 속에서 이동하고 머물며 관계를 맺는 과정을 살펴본다. 하나의 장소에는 여러 경로가 겹쳐 있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 풍경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관계가 존재한다. 아트포럼리 책임큐레이터 이주연

생태적 지도그리기: 연결과 남겨짐의 사이에서
이규원(문화인류학 연구자)
집에서 호수까지 걷는다. 길을 따라 식물과 새를 만나고, 물이 흐르는 곳과 고인 곳을 살펴본다. 펌프와 배수구, 저류시설과 정화장치도 지나친다. 익숙한 산책길의 풍경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낯설어진다. 물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흐름은 인간이 설치한 장치들에 의해 조절되고 유지되기도 한다. 식생은 자라지만 때가 되면 잘려 나가고, 물속의 찌꺼기는 걸러져 슬러지가 된 뒤 다른 장소로 옮겨진다. 작가의 작업은 도시의 ‘생태하천’을 과연 자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물순환 시설과 생태 복원 사업은 물의 흐름을 조절하고 수질을 개선하며 사람들이 이용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분리하고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행정 문서에서 이러한 작업은 수질 개선이나 아름다운 경관, 생태 복원이라는 언어로 설명된다. 이러한 언어는 관리의 목적과 효과를 드러내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어떤 생명이 영향을 받는지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는 공식적인 기록에서 희미해지는 것들을 찾아 나선다. 무엇이 제거되고 무엇이 남겨지는가, 그리고 어떤 자연이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되는가.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치는 장면들은 생태하천의 인공성을 폭로하는 하나의 비판적 설명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시설 주변에서 식물이 자라고 제초 작업으로 서식지가 변하면 동물들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달라진 환경에 적응한다. 물길을 만들기 위해 심은 풀은 인공적인 관리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성장하고 변화하는 생명이다. 물에서 분리된 퇴적물과 슬러지도 하천의 흐름과는 다른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작가가 관찰하는 것은 인간의 통제와 자연의 생명력이 대립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물과 퇴적물, 식생과 새를 비롯한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기 다른 조건에서 경계를 통과하고, 머물고, 우회하며, 다른 영역을 침범하는 방식이다. 관리 장치는 이러한 움직임을 조절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의도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작가의 관심은 어떤 자연이 보존되고 제거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떤 조건에서 이동하고 살아가는가라는 문제로 확장된다. 생태하천은 자연과 인공이 분리된 두 영역이라기보다 상이한 흐름과 경로가 교차하는 장소로 나타난다.
작가는 하천에서 마주친 대상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명칭과 설명을 덧붙이며, 관찰 과정에서 생겨난 생각과 의문을 함께 남긴다. 이러한 기록은 식물과 동물, 관리 장치와 물질의 흔적을 개별적인 항목으로 축적하는 아카이브를 이룬다. 이러한 아카이브는 자료와 노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작가가 그린 작은 그림들 역시 특정한 장소와 대상, 그때의 상태를 기록하면서 관찰의 단편들을 회화적으로 축적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현장의 정보를 그대로 옮기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정화장치와 파이프는 구조의 세부를 충실히 재현하기보다 단순화된 형태와 구획, 강한 윤곽선과 색면으로 재구성된다. 백로는 주변의 구조물과 식생 사이에서 두드러진 형상으로 나타나고, 여러 마리의 오리는 반복되는 형태를 통해 화면에 리듬을 만든다. 식생 역시 잎의 모양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과 색의 반복을 통해 화면 안에서 움직임을 구성한다. 이처럼 작가는 관찰한 대상을 선택하고 단순화하거나 변형하면서, 형태와 색채, 반복과 구획을 통해 회화적으로 재구성한다. 따라서 작은 그림들은 현장의 정보를 보존하는 기록인 동시에 관찰한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지각하고 해석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렇게 축적된 관찰들을 연결하는 형식으로 작가가 선택한 것은 지도다. 전시장의 회화들은 상류에서 하류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 배열되며, 함양지에서 슬러지 통까지 이어지는 또 다른 지도는 물이 이동하는 경로와 그 과정에서 분리된 물질이 이동하는 경로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전체적인 지형을 압축한 지도에서도 물길과 시설, 식생과 동물은 서로 다른 구획 안에 배치되면서 하나의 화면을 구성한다. 이러한 회화적 지도는 서로 다른 경로를 하나의 질서로 통합하기보다 연결과 분리가 동시에 일어나는 양상을 드러낸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지도와 트레이싱(tracing)을 구분했듯, 여기서 지도는 이미 존재하는 환경을 축소해 재현하는 도식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 지형과 경로를 참조하면서도 개별적인 관찰들을 선택하고 변형해 새로운 관계 속에 배치함으로써 이전에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연결과 단절을 드러낸다. 지도가 주어진 구조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접촉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는 실천이라면 작가의 회화 역시 개별적인 장면들을 연결하면서 환경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지도 제작은 개별적인 관찰을 더 넓은 관계 속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제임슨이 개인의 국지적 경험과 그 경험을 규정하는 더 넓은 사회적 총체성 사이의 간극을 다루기 위해 인식적 지도그리기(cognitive mapping)를 제시한 것처럼, 작가의 지도는 집 주변에서 마주친 풀과 새, 물을 관리하는 시설과 슬러지를 각각의 장면으로 기록하는 데 멈추지 않고 이들을 연결해 개별적인 관찰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전체적인 생태적 관계를 가늠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기후변화처럼 서로 다른 장소와 규모를 가로지르는 생태 문제를 생각하면 일상의 구체적인 경험을 더 넓은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이러한 시도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나 이 지도가 제공하는 것은 완결된 총체성의 재현이 아니다. 환경의 관계를 지도화한다고 해서 그 전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더 넓은 관계를 파악하려는 시도와 함께 그 관계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개별적인 존재의 특수성이 함께 남는다는 점이다.
전체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그 안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개별성 사이의 간극은 미학적 가능성이 되며, 작가의 상상력은 바로 이 간극에서 작동한다. 정화장치와 슬러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룬 작업들은 기술적 구조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색채와 형상을 통해 그 내부를 상상적으로 구성한다. 작가는 시설의 기능을 조사하고 물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지만 그러한 지식만으로 직접 관찰할 수 없는 내부의 모든 과정을 하나의 시야에 담을 수는 없다. 회화적 상상력은 관찰된 구조와 알려진 기능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영역에 시각적 형상을 부여한다. 이는 기술적 설명이 제공하지 않는 사실을 임의로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과 지식으로 확인되는 것과 상상으로 구성되는 것을 한 화면에 놓고 그 사이의 간극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이 된다.
유머를 활용한 그림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또 다른 방향으로 확장한다. 식물의 웃는 얼굴이나 파이프에 그려진 표정은 식생과 시설을 기능과 명칭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게 한다. 집에서 탈출한 왕도마뱀의 여정을 모험으로 그린 회화는 그 사건을 생태적 교란이나 관리 체계의 허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겨두지 않고 도마뱀에게 하나의 서사를 부여한다. 검은 슬러지를 케이크처럼 표현한 회화 역시 제거되어야 할 잔여물이라는 분류와 회화적 이미지 사이에 어긋남을 만들어낸다. 한편 식물을 마티스의 「춤」처럼 움직이는 형상으로 재구성한 그림에서는 웃고 있는 식물의 움직임과 리듬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식의 변형은 대상의 의미를 하나로 고정하지 않고 기능이나 분류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특이성과 낯섦을 드러낸다. 상상력과 유머는 과학적 지식이나 비판적 인식을 대체하지 않지만 더 넓은 관계를 이해하려는 시도 속에서도 개별적인 존재의 의미가 완전히 소진되지 않도록 한다. 이때 미학의 가능성은 총체성을 대신할 다른 설명을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파악하려는 시도와 그 안에 온전히 포섭되지 않는 존재들의 특수성이 함께 드러나도록 하는 형식을 만드는 데 있다.
「이곳을 통과하는 방법들」이라는 제목은 물과 생명이 한 장소를 통과하는 여러 경로를 가리키는 동시에 그 장소를 이해하는 방식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물의 흐름을 따라가던 시선은 어느 순간 그 물에서 분리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슬러지를 향하고, 식생을 관찰하던 시선은 그것이 잘려나간 뒤의 장소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로 이동한다. 하나의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경로가 드러나고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작가의 지도는 이처럼 하나의 장소를 단일한 질서로 파악하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와 물질의 이동을 따라가며 그 장소를 거듭 새롭게 보게 한다.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경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지도의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관점에서 놓친 것을 다른 경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긴다. 이곳을 통과하는 방법들이 복수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역시 하나의 시선이나 설명만으로 다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