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공장 <살자>
그림공장 인형설치전
<살자展>
2006.7.10 (Mon) – 7.23(Sun)
그림공장 길 위의 작품들, 안으로 들여오기
이번 전시는 예술의 사회성을 강하게 드러내온 ‘그림공장’이라는 미술창작단체의 인형설치작업을 조명하고자 한다. 평택주민들의 형상을 한 인형작품들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미군기지 이전협정 등의 문제, 이미 두 번에 걸쳐 삶터를 이주해야 했던 평택주민들의 이야기와 500일을 훌쩍 넘긴 촛불집회 등 투쟁의 과정들을 세세히 적은 여느 글귀보다 더욱 강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림공장은 지난 3월부터 용산역 광장과 마로니에 공원 등에서 야외전시를 개최하고 여론에서 소외되고 왜곡되어 왔던 평택주민들의 생생한 정황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작업을 해 왔다.
재료적 측면에서는 사실적인 이미지 표현과 속도감을 요하는 작업기간을 고려하여 사람보다 약간 큰 크기의 인형들을 각목으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골판지를 덧대고 초배지를 발라 살을 붙이고 광목천으로 염색을 해 옷을 입혔다. 백발이 성성하고 구부정한 인형들은 농사를 불허한다는 경고장을 읽고 있거나 비닐하우스 안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평택주민들을 대신하고 있다.
이처럼 현장전시를 통해 선보여온 인형작품을 다른 주제어로 다른 공간에서 설치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살자’전이 갖는 의미 중 첫 번째는 사회적 참여의식이 강한 동적인 작품을 유희의 공간인 전시 공간 실내로 들여와 설치하는 행위자체이다.
인형들은 벽과 유리사이의 안정적인 전시공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설치될 예정이다. 이것은 그림공장 본래의 작품제작의도에도 반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리얼리티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히는 길이 아닐까. 평택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개입하지는 않지만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는 보편적 양식인들의 마음의 지형도를 드러내게 한다. 그래서 전시를 보고자 찾아온 사람들이 작품을 음미할 때 벌어지는 정서의 이중성, 타인의 삶을 대상화시켜 관조하고 느끼는 미적 쾌감과 그것이 행동이나 사고에 미치는 정도까지를 담아내는 의도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20세기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는 계속적인 자본의 흡수력을 탈주하는 노정이라고 정리한 글귀가 떠오른다. 현재까지도 자본의 흡수력이 작가들의 의미 있는 탈주보다 강하고도 강한 시기이다. 도망가면 미디어에 주목받고 도망가면 미술관으로 모셔지고 또는 작가 스스로 자본을 이용하여 모셔지길 바라는 자본화된 예술이기도 했다
남한의 경제구조가 글로벌 시장경제의 시스템 단계 중 안정화(?)단계에 들어섰고 20세기적 예술 인문학의 지적 스펙트럼은 세계 여느 나라와 정도가 동일하다.
이러한 동일성의 범주에서 바라본 남한의 21세기 초반에는 20세기 후반의 시대성이 반영된 민중미술의 내용적 심화발전의 현상이 포착되어지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그림공장의 활동상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다. 한편에서는 ‘아직도’ 라는 견해도 있겠지만 그림공장은 우직하다 못해 바보스러울 정도로 억압받는 민중들의 삶 자체를 현장에서 표현하는 현장 작품들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젊은 작품들을 나름의 안정적인 체계를 갖춘 전시공간과 언론매체를 이용하여 담론을 만들어내고 다시금 작가(그림공장)가 낯선 길(현장)로 탈주를 감행하고 또다시 안으로 당기는 끊임없는 반복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작가의 순수한 미의식의 열망은 현대사회가 예술을 통해 찾아낸 숨구멍이 아닐까 한다.
그림공장의 남한미술사적 위치
1980년대에 태동되었던 민족민중미술계열의 다양한 그룹활동은 한국현대미술의 지형과 스펙트럼을 확장시켰다. 1980년에 창립한 ‘현실과 발언’을 시작으로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미술가의 책임, 미술의 힘에 대해 고민하고 기존 미술제도 안에서 벌어지는 미술의 관행을 비판하고 새로운 이념의 미술의 필요함을 절감하고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여러 그룹들 중 한층 더 운동성을 담보하고 조직적 동력도 갖춤으로써 ‘민중미술’의 핵심을 가장 잘 살렸다고 할 그룹 ‘두렁’(1983), 과거 「민족미술협의회」의 산하 조직으로 90년대 중후반을 정점으로 현재는 소강상태에 있는 노동미술위원회(1989)는 예술의 순수성이 현실성과 변증법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주었다. 이후 이렇다할 그룹활동이 두드러지지 않다가 99년 범민족대회를 치루면서 학생미술운동의 사회진출을 고민하던 홍익대 미술대학 출신 인송자, 김성건, 전진경, 심상진이 주축이 되어 그해 10월 그림공장을 창단했다. 현재 최우정, 김주철, 이종민, 장소희, 장진익, 김홍모, 김경진, 신미현 등 다양한 장르의 미술전공자들과 비전공자까지 아우르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져있다.
창단이후 범민족대회 걸개나 무대, 고 김양무 선생 장례 영정 및 걸개 작업 등 당시 주요사안에 대해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미술운동단체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그러다 2000년 미공군의 사격장으로 지난 50여년 동안 사용되어온 매향리를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하여 그림공장 이외의 참여작가를 모아 전국순회전을 하게 되었다. 매향리전을 시작으로 이후 매년 점령군, 행복한 통일, 청산, 난타 USA전 등 의 기획전시를 주최하여왔다.
현장성이 강한 작품들을 제작하며 그림공장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현장에서 지켜나가는 통시적 위치를 점했다. 또한 해체가 다양성으로 현상화된, 진정한 의미로서, 다양성의 시대에 구축되는 민중미술의 내용적인 미적 심화발전이 포착 되고, 되어야만 하는 것이 그림공장이 남한미술사에서 갖는 공시적 위치이다.
마치며
이번 설치작업을 준비하면서 집단창작이 가져 왔던 즉자적 현장성과 미적 생명력 간의 부조화가 이 그룹에서 상당부분 극복되었다고 보는 것은 기획자로서 갖는 편애 섞인 판단은 아닐 것이다.
7년이라는 생존기간을 갖고 있는 그림공장은 이전의 단체와는 다른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매체로 각자의 영역에서 확장된 현장성을, 경제적 악조건에서도 이겨내며, 한층 다듬어진 조직의 외양을 보이며 발전 해왔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요구적 영역과 외양의 발전만큼 동일한 크기의 해결과제들을 안고 있다.
우선 그림공장은 미술운동단체로서 갖는 사업적 이미지와 활동경향과 함께 창작집단으로서 작품의 속도전과 작품 자체가 갖는 미적 가치에 대해서도 비평적 담론을 생성 해 낼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자적인 사회적 배경과 이슈에서 한걸음 떨어져 작품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생명력을 읽어내고자 하는 노력이 안팎에서 활발히 이루어질 때 집단이 간과하기 쉬운 각 개인들의 열정까지 채워내는 그룹의 자유로움을 지닌 긍정적인 형태의 진보적창작단체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살자’전은 리얼리티의 현장성이 문화적 변동과 기술매체의 발달로 인한 사회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활동범주를 확장해 갈까하는 고민에서 비롯된 전시로 현장의 확장, 다양화라는 의도를 내포한다.
또한 전시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그림공장이 길 위에서 찾아낸 무수히 많은 이들의 삶이 존재 자체로서 당위성을 갖으며 ‘살아라’ ‘산다더라’가 아닌 ‘살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협의적 의미도 갖고 있다.
2주간의 짧은 전시이지만 그림공장이 예술의 사회적 진정성에 있어 노미위 이후 양적변환에 더해 질적변환을 거친 미술창작그룹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계기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대안공간아트포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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