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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열 <개인 個人, The individuals>

한재열 Jeayeol Han

개인 個人, The individuals

2014.02.25 – 3.22

 

한재열웹자보1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사슴사냥 레지던시 한재열 기획 초대전

개인(個人)_The individuals

 

대안공간 아트포럼리의 레지던시 프로젝트 사슴사냥 2기 작가로 활동 중인 한재열이 2014년 아트포럼리 전시의 첫 문을 연다. 그의 작업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강한 색과 빠른 터치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4호정도의 작은 캔버스에 스쳐지나가는 순간의 이미지(얼굴)들을, 실물크기를 추구하며 작업해 오다 2013년을 기점으로 100호, 200호로 거대 확장을 시도한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가 그려온 찰나의 이미지(얼굴)들은 지나가버린 순간을 현실로 옮기는 일과 같다. 그러나 그 얼굴은 색과 거친 붓자국으로 어렴풋하게 형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뿐 더 이상 얼굴이 아니라 작가화 된 삶 속의 풍경이 된다. 이렇듯 작가와 우리가 마주하는 얼굴들은 이미 지나가버린, 스쳐지나간 이미지와 순간이 만나는 찰라 그 이상이 것들을 이야기 한다.

 

불쾌 속의 쾌의 미감

미술대학 졸업 이후 뉴미디어를 활용한 예술 활동에서 작가는 벗어날 수 없는 평면적인 답답함을 느꼈다. 새로운 장르에서 조차 한계를 느낀 작가는 오히려 기본, 더욱 회화적인 것에 몰두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한재열은 조형적으로나 감성적으로 가장 함축적인 형상인 얼굴을 원시적인 힘과 괴테의 색채론을 토대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의 그림은 빛을 통해 표현되는 명암보다는 괴테의 색채론의 철저한 인식하에 색채의 선명함에 주목하여 원색과 검정, 하양의 색채를 넘나들고, 구상과 추상을 경계를 넘나든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고안한 콘트라포스트를 얼굴에 적용하여 자연스러운 균형과 조화를 이뤄내고 이것이 그의 그림을 페인팅인 동시에 조각처럼 보이게 하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괴테의 색채론에서 작가 취하는 색채와 검정과 하양을 통해 나타내는 명암효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위한 콘트라포스트 적용까지, 이 모든 것이 한재열 작품이 갖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작가는 색채의 힘 자체로 감성을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색의 필요성을 더 중요하게 보고 현대에서 쓰여지는 색의 근본에 대해 성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다. 그가 화면에 담아낸 원색이란 원시성을 지향하고 근대성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결국 이것은 현대인의 결핍의 지점과 시대를 인식하는 작가만의 방식과 도구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 모든 과정의 시너지로 발생하는 에너지에 우리는 가장 먼저 압도당하고 그 속에서 불쾌속의 쾌를 경험한다. 작가 사용하는 색채의 강렬함뿐 만 아니라 물감이나 오일바를 뭉개고 짓누르는 방식에서도 우리는 쾌를 경험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불쾌가 미적판정을 촉진하는 특별한 감정이라는 것과 동시에 그 속에 쾌라는 미감 또한 분명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다. 쾌와 불쾌에 대한 판단은 대상과 상황으로부터 느끼는 인간의 감정에 기초하며 이미지로 다가올 때 불쾌와 쾌의 두 가지 모습은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냉소적으로 바라보기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냉소적이성비판」를 인용하자면 ‘시대는 냉소적이 되었고, 이 새로운 가치도 단명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구나 당사자가 될지 모른다는 당혹감, 시민 가까이 숨쉬는 것, 평화보장, 삶의 질, 책임 의식, 환경 친화, 이 모든 것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적절한 때를 기다릴 수는 있다. 냉소주의는 그런 우리 뒤에서 장황한 회담이 끝나고 사태가 진행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맥빠진 근대성도 ’역사적으로 사유할 줄 알지만, 우리 자신은 이 미 오래전부터 의미 있는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현대인들, 특히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인 상황들을 접하며 깊은 탄식 속에 무력감을 느끼며 스스로 무감각해지려하거나 수많은 정보를 신뢰하지 않는다. 내적 상심에 기인한 의심은 스스로 반문하며 개인의 문제 안으로 침잠해 간다.

비단 한재열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작가의 태도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작품 속에 존재하는 얼굴은 개인이지만 하나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스쳐간 풍경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실을 가득 채운 얼굴들은 서로 다른 연작이지만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지게 하는 지점은 현상과 분리된 유기체 자체에 집중하여 근대이성의 장점을 몸으로 체계화하는 일련의 과정이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충격의 가능성을 시도하는 힘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대의 예술가들도 거친 통과의례와도 같은 근대에 대한 탐구는 일상화를 넘어 작가 고유의 서사적 구조를 구축하는 ‘성찰’이 수반될 때에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작가 한재열은

코드의 감옥이라는 지금, 근대이성으로의 회귀로 보는 철없는 사고로 사유되지 않는다. 코드가 시스템의 시각화로 복기되지 않는 간극을 점검과 이미지 발현으로 간극의 복기라는 과정으로 보고자 한다.

이번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통해 본 한재열은 성실성에서 기반한 다작과 작업에 대한 과학적 사고, 연구의 자세라는 근래에 보기 드문 작가적 미덕을 갖췄다. 또한 작업과 작가의 사고가 그대로 일치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변화된 작품에서도 읽을 수 있다. 가장 달라진 지점은 화면의 확장인데 테크닉적 변화의 시도로 보더라도 상당히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고 이 거대미는 작가가 주목하는 불쾌안의 쾌를 설명하는 예시와도 같다.

커다란 얼굴이 주는 거대미의 쾌감은 미감을 확산하는 의미의 전환, 개인의 얼굴이 풍경이 아닌 ‘사람’으로 다가올 때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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