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민예총 〈기울어진 시선〉
전시명 : 기울어진 시선
전시기간 : 2023.8.30.(수)-9.27.(수)
참여작가 : 강근옥, 고천성, 권한솔, 남수지, 박나현, 박미현, 안미현, 이능재, 이정현, 최정규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 부천시
관람시간 : 매주 월–토 / 10:00~18:00
ᅠ 일요일, 공휴일 휴관
관람료 : 무료
주변의 실존을 예술의 재료로 삼아 어떤 양식을 가진 작품으로 만들 수 었을까라는 고민으로 시작하였다. 규정할수 없는 실존을 설명하려면 인간적인 가치로부터 벗어나려는 도주들이 필요하다. 푸코의 ‘파레시아’ 개념을 나의 시선으로 풀어본다. 마음 속 전부를 이야기하면 불이익이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개입행위를 통해서 용기를 호출하여 풀어나가야한다. 이번 작업은 나에게 용기가 필요했다. 사회규범을 상태로, 미학적인 가치와 규범을 상대로 잘라내고 거부하며 논쟁을 일으키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나에게는 행복의 팔레시아이다. 고통스럽지만 누구도 피할수 없는 숙명적인 질문으로 이끌어본다. 이렇게 될수도 있고, 저렇게 될수 도 있구나. 저런 삶도 가능하다는 사유의 시선으로 다른 삶들이 이어지기를 …..
자이나교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중심에 두지 않고 작은 미물조차 존중하는 생각을 갖는다. 본인이 생각 할 때 자이나교는 ‘공존’에 중점을 두고 싶지만, 깊은 차원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인간 이외의 모든 생물의 자양분이라고 까지 생각이 들 정도이다. [···] 낫을 꺼내 산소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벌초를 하며 문득 여러 벌레들이 거미줄 같은 집을 짓고, 작은 벌집도 있고, 작지만 이 나무 저 나무에 오르내리며 열매 혹은 필요한 것들을 채집하며 작은 생태계를 형성 하였는데 내가 느닷없이 그 작은 세계 공간을 파괴하는 것을 주저 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해결을 위해 인간의 욕심을 버려야 하고 공존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낫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오히려 반려종으로서 낫을 떠올려보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낫과 자연 모든 존재와의 공존을 짚어본 후, 이후 이어지는 프로젝트에서는 실질적으로 동물의 움직임에 필요한 관절과 근육을 낫에게 물리적으로 적용하여 형상화 해볼 예정이다.
미로는 호기심과 문제 해결의 과정을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미로에 출구가 없다면?
현대 사회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불합리, 불평등, 차별 등에 의해 출구가 차단이 되고 봉인이 된 미로 속에서 길을 찾지만 결국은 영영 그 속에 갖혀 생을 마감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출구없는 미로로 표현해 봤다.
이타종에 대한 존중 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 옅어져가는 현대사회는 자연스레 디스토피아적 세계로 걸어가는 것 같다. 끝없는 팽창, 발전, 자본과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배제되고 멸종되는 약자들. 자본주의 속 기계화되고 부품화 된 인간성은 자연의 섭리와 흐름은 생각치 않는다. 끝없이 젊고, 화려하고, 발전할 것 같이 눈을 가리는 그들. 기계화를 넘어서 기계가 되기를 바라는 듯한 그들.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고, 정치력을 가지지 못하면 폐해를 넘어서 기본권에 침해가 당연히 찾아오는 폭력성 속에서 이 폭력이 결국 향할 곳은 어디인지 생각한다. 멸망 그 이후에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일까? 자연일까? 자연만이 고요하게 남은 곳, 인류의 흔적 속에서 존재하는듯 존재하지 않는 듯, 사이버인 듯, 아닌 듯, 그 곳에 남을 존재는 무엇인지 상상해본다.
내게 현대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혼돈된 이미지로 줄곧 남아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서 민주주의는 왜곡되고 흩어지고 붕괴되고 있다. 생명과 존재의 존엄이 제국주의 패권과 자본 권력으로 인해 무시되고 지배당하고 파괴되고 있다. 길을 잃어버린 별처럼 지구촌을 떠돌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생각하면서 그렸다.
완만하고 단단한 언덕을 이루게 하는 것은 겹겹이 쌓여진 우리의 흔적’
점점 ‘나’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잃은 이들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언덕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줄 수는 없을까.
같은 표정으로 같은 곳을 응시하며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낯설지만 어떤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어보고 말을 건네보는 일들이 오롯한 나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애벌레는 불완전하고 미성숙하지만 자신만의 잠재력과 에너지를 품고 천천히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작가 본인을 상징하는 요소입니다.
권력은 민중들에게 알게 모르게 물들이려고 시도하고 물들이고 있다. 권력은 누구나 그렇다.
그것은 결국 힘없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쌓아지고 다시 억압으로 돌아온다.
악순환이다.
권력은 항상 권력없는 사람드링 우러러 볼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있으려 한다.
그리고 우리를 내려다 본다.
점철된 관계의 생과 사 안에서 인간, 동식물, 한낱 미물까지 귀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무수한 관계 속 ‘보이지 않는 존재’는 혼재하며,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의 존재는 서서히 비가시화 된다. 그리고 이내 잊힌다.
여기 있음을, 존재하고 있음을 외치는 함성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시선이 머무는 자리 그 너머 이상까지 바라보며 소외된 개체 없이 커다란 유기체로 더불어져야 한다.
세상의 모든 개체는 다름없이 같고, 다름없이 존재한다.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일상에서 배제된 것들을 바라본다. 동네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 참매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긴부리와 갈고리를 가진 참매는 유조임에도 듬직함과 우아함을 뽐내며 낮은 나무사이를 오가며 호기롭게 앉아 있었다.
고층아파트 옥상에서 황조롱이 한 마리도 같은 시간 참매 유조를 바라보다 쏜살같이 날아들어 공격을 가했다. 숲이 아닌 도시 한 복판에서 펼쳐지는 광경이다. 사냥을 하기에도, 애벌레를 잡아 먹어 보기에도, 물을 먹기에도 많은 것들이 아쉬운 그곳에서 황조롱이는 참매 한 마리를 쫒다가 지쳐버렸다.
몇그루 있지 않은 나무에 앉아 이른 아침부터 큰소리로 할 말이 많은 직박구리 떼 덕분에 아침 기상 시간이 당겨지고 있는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눈에 들어온 것들은 이들이 살아가기엔 많은 것들이 부족한 곳에서 버티며 살아내고 있는 것들이다. 개발과 함께 철새도 잘 찾지 않는 이곳에서 나의 일상으로 들어온 것들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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