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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6월

이하展 1:3비평_이윤영

 

2015년 대안공간 아트포럼리에서 진행되는 <비평가 레지던시_사유게르 프로젝트>는 20-30대 젊은 청년 비평가들이 수년간 탐구해온 예술에 대한 시각들을 개인의 사적인 페이지가 아닌 공식적인 자료화에 대한 필요성에 의해 기획되었습니다. 그 첫번째 프로젝트로 2015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현장전으로 열리는 이하 작가의 전시에 1:3비평글이 완성 되었는데요. 이 글이 작가에게도, 작가의 관람객에게도 의미있는 작용이 될 것 같습니다. 아울러 비평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꿈꾸는 젊은 비평가들과 그들의 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곧 펼쳐치는 이하 작가의 전시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웃음-비(非)웃음의 정치학

■이윤영

이하는 팝아트 형식을 빌어 정치인들의 케리커처를 그리고 이를 포스트나 전단지로 제작하여 공공장소에 부착하거나 건물의 옥상에서 살포한다. 작가가 취한 전략은 정치인들의 권위적이고 엄숙한 이미지를 귀엽고 샤방한 만화 케릭터와 중첩(더블링)시킴으로서 그들의 권위가 갖는 무게를 희석시키고 이를 공공장소에 유통시켜 대중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출발은 2009년 뉴욕에서 생활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모전에 탈레반 병사의 이미지를 귀엽고 아기자기한 케릭터로 형상화시켜 수상한 이후, 2010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사건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폭압적이고 권위적인 인물들의 이미지들을 귀엽고 예쁜 이미지로 탈바꿈시킨 <독재자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이하의 작업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대중적인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대중문화 속 케릭터 이미지를 중첩시킨 구체화된 양식으로 나타난다. 작가 자신도 고백하지만 이 시기의 작업들은 현재의 작업들보다는 ‘덜 정치적이다’.
이하의 작업이 본격적인 행동주의적 양식을 띄게 된 건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후부터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의 정치적 피로감과 서민들의 무기력감을 미술계 내부의 위계구조 안에서도 고스란히 느꼈던 경험과 미술작가로서 이에 대항할 최적의 형식을 고민한 끝에 보다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하의 작업은 단순히 개인의 정치적 발언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의 시민들은 거리에 뿌려진 전단사진이나 이를 취재한 신문기사 등을 통해 작가의 작업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고 작가가 그린 케릭터들을 단순히 웃음코드로 다루며 온라인 상에서 재합성하거나 퍼나르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이하가 그린 무수한 케릭터들 중에서 머리에 꽃을 꽂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케릭터 아래로 Mad Goverment 라는 단어만 없었다면 이 풍자화가 반정부적 정서를 함의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친근하게 재현되어 있다.
네티즌들이 정치 권력자들의 이미지를 유쾌하고 장난스럽게 다루는 반면에 미술관과 국가 권력기관의 대응은 사뭇 진지하고 심지어 히스테릭하기까지 하다. 미술관 관계자들이 고위 관료들을 의식해 이하의 작품을 벽에서 떼 내거나 갤러리 관장이 전시 도중 창고에 자신의 작업을 숨겨놓는 일은 물론이고 2012년 전두환 초상화를 그린 이후에는 ‘불법 광고물 부착 혐의’, 벽의 소유권에 대한 ‘주거권 침해’ 등 각종 경범죄의 죄목으로 시시때때 사법기관에 불려 다니는 일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이와 같은 하위 권력기관의 유난스런 반응들은 그들이 상징적 권력에 복무하고 있음을 제 스스로 폭로시킴과 동시에 상징권력이 갖는 뿌리 깊은 엄숙주의 문화를 보여준다.

풍자의 성역을 허무는 매체, 검열하는 권력들

우리 하등동물들은 수치와 모욕과 끊임없는 박해에 대항해, 마침내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인간들이 씌운 멍에를 벗어던지기로 결정했다. 압제자들은 그들이 창조된 이래로 자유와 평등을 단지 이름뿐인 껍데기로 만들었다.
– 「그랑빌 우화」 중에서
풍자화의 역사는 기원전 이집트의 단순히 지배층을 풍자하는 이미지들부터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풍자화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 시기는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부터였다. 근대의 조짐이 시작되던 이 시기에 그림과 만화는 대부분 문맹들이었던 당시의 민중들을 향한 효율적인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부상했다. 따라서 풍자작품들은 대중의 관심 사안을 대변하거나 판단을 촉구하는 도구이자 문화 주도자인 엘리트가 대중에게 팔기 위해 만든 생산품이며 때로는 설득, 선동하기 위해 또는 재미로 그려진 것일 수 있다.
시민 사회의 위선을 풍자한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나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 풍자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 1808~1879), 주로 정치적 인물들의 케리커처를 신랄하게 그린 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 1756~1815), 정치적 결단에 대한 풍자화로 유명한 리처드 뉴턴((1777–1798) 등 풍자의 대상과 내용도 포괄적 연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풍자화가 본격적인 황금기를 이루게 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쇄매체의 발달과 맞물려서다. 풍자화는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주로 책의 삽화로서 대량 복제가 가능한 대중매체인 판화로 제작, 인쇄되었는데 18세기 말에는 뮌헨의 제네펠더가 소개한 석판과 영국의 토머스 뷔크에 의한 세로[斷面]목판이 발명되면서부터 인쇄공정이 간소화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인쇄부수의 효율적 증가를 불러와 정치적 공론장을 확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풍자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자 국왕은 검열을 강화했고 만화가, 인쇄공, 작가들이 사형당하기도 했다.
과거의 판화가 소수의 문화 엘리트 집단인 작가, 인쇄공의 수공정에 의존해 제작되는 1대 다중방식의 대중매체였다면 오늘날 SNS는 다수의 대중이 다수의 또 다른 대중들에게 동시다발적 전송이 가능해 아마추어 대중들의 문화적 실천이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오리지널 작품은 포토샵, 플래시 같은 편집 프로그램의 발전으로 메타연성이 가능해졌다. 일단 한번 업로드하면 수 초 이내로 전세계의 대중들에게 전파되고 사라지는 타임라인의 무한한 스킨에서 이를 사전 검열하기란 불가능하며 흐름을 통제할 수도 없다.
원본을 제작한 이하 작가, 각종 메타버전들을 생산하는 각종 커뮤니티 활동가들, 좋아요를 눌러 동조를 구하는 네티즌들, 무한 공유하며 유통시키는 네티즌들, 이 모든 게시물들에 한마디 덧붙이는 댓글러들.. 이들 중 누구에게 정치적 혐의점을 씌워야 할 것인가. 작가 이하의 작품들이 미술계에서는 기득권에 저항하는 풍자회화로, 사법기관에서는 광고물부착 퍼포먼스 행위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은 이미지 파일 등 담론장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매체로 전유되어 이해되는 일련의 상황들은 풍자의 웃음을 결정짓는 정치적인 사안을 구성하는 조건들과 검열을 비웃는 오늘날의 예술행동을 지탱하는 새로운 매체의 기능을 역설적으로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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