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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Trouble〉 트러블 트러블 〈트러블 Trouble〉 트러블 〈트러블 Trouble〉

〈트러블 Trouble〉

대안공간 아트포럼리는 올해로 4년 차 ‘객체 지향(Object-oriented)’이라는 키워드로, 개인 스스로와 인간, 인간과 지구에 함께 존재하는 생태계, 기후, 질병, 경제 등, 인간과 지구를 둘러싼 다양한 객체와 이것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트러블(문제 trouble)을 여러 관점에서 파악해보고 이를 예술로 시각화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출된 수많은 트러블을 향해 과연 “트러블이 깔끔하게 해결될 수 있을까?”와 같은 일련의 물음에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내렸다.

다만 ‘트러블’ 사이에 위치한 각각의 객체들이 자신과 서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일은, 인간의 내면, 사물, 자연, 인종, 젠더, 질병 등, 트러블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에 일방적인 것이 없고 모종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지구에서 화석연료를 태워 지구에 미친 기후격변은 수 십 년 전부터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아마존 숲에 사는 인간과 비인간들은 서식지를 빼앗긴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 기후격변의 트러블은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등 선진국의 도시가 생존의 위협을 받기 시작된 상황이 촉발된 후에야 비로소 그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트러블이 인식된 상황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트러블과 이에 대한 책임이 인간과 비인간,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는 모두 설명될 수 없음을 알려준다. 말하자면, 특정 존재와 관계 속에서 파생된 트러블은 수학처럼 문제와 명확한 답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눈치 챘겠지만, 이번 《트러블 Trouble》 전시를 통해 갱신하고자 하는 객체 지향의 개념에는 문자 그대로 주체를 버리고 객체만을 지향한다는 의미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객체로 간주될 수 있는 전시를 구성하고 있는 작품에는 우리와 이 시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양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존재들은 작가들이 관계성의 맥락에서 다양한 객체와 트러블을 사유하고, 관념화하고, 형상화 한 흔적들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관계성 위에서 작품에 대한 사유를 시도해보길 바란다. 전시장의 작품에 등장하는 존재들을 객체화하고 주체화하고 재호명하며 관계 맺기를 반복해보자. 그 말인즉슨, 작품을 통해 트러블을 발생시킨 혹은 트러블을 둘러싼 관계 속에 위치한 자신의 사고, 경험, 감각 등에 대한 검열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유의 반복은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객체간의 경계를 허물고 다시 관계를 체득하는 걸음으로 이끌고, 나아가 관계에서 발생된 트러블에 대해 존중과 책임으로 응답하게 도와줄 것이다. 

<작업 노트>

-김준서, <작은 변화들에 대한 기록>, 2019, 키네틱 사운드-마이크데이터-sound visual 프로젝션, 1100x1100x1800cm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는듯 하지만 삶의 궤적은 서로 다르다. 서로가 부딪히고 튕겨나가며 작은 변화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사소하지만 우발적인 작은 변화들을 관찰하고자 작은 세계를 만들었다. 이 세계는 작은 구슬들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굴러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모터가 만들어내는 각도, 무게중심, 모터의 상태와 같은 여러 조건들에 의해 작은 객체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궤적을 만들어간다. 움직임의 흔적은 궤적을 남기고, 궤적은 다시 소리가 되어 공간을 채운다. 공간 안에 머물렀던 진동은 다시 이미지로 환원되어 데이터로 기록된다.

-김태덕, <프로젝트 조르주 Project Goerges>, 2021, 나무판, UV반응성 물감, UV조명 150x170cm 

벽에 낙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왕이면 바타이유가 얘기하던 위반과 금기도 한 번 건드려보기로 했다. 그래서 왠지 손대면 안되고, 항상 깨끗하게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전시장의 벽에 낙서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현대판의 “라스코 동굴”을 만드는 것이다. 작가가 벽에 손을 대면 그 벽은 다시 일반인은 건드리면 안 되는 금기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이 금기도 위반해 보는 것이다. 관객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낙서를 하게 전시장의 벽이라는 그 개념을 허무는 것이다. 관객이, 어설픈 참여형 전시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그 자체가 창작자가 되고, 관객의 낙서가 작품이 되어 말 그대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없는 그런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유비호, <예행연습 Rehearsal>, 2010, 개입형 퍼포먼스, 영상 프로젝트, 00:06:00 

Rehearsal(예행연습)은 전기에너지를 얻기 위한 에너지원의 이용 방식 중 탄소와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를 가장 높은 비중을 두고 정책을 시행하는 한국전력공사(KEPCO. Korea Electronic Power Corporation)의 에너지 정책과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심리적으로 표출한 작업이다. 이 작업은 2010년대 초 수행하였던 ‘극사적 실천(極私的 實踐, Extreme Private Practice) 시리즈’의 번외편으로, 퍼포먼스는 어느 무심한 날 밤 자정쯤, 한국전력공사 본사 정문에서 감행한 작가본인의 불편한 심리와 심정의 개입행위이었다. 본인은 이 사건에서 실타레를 장착한 무선자동차를 무선조정기로 조정하여, 한전본사 정문에 임시적으로 가늘고 느슨한 장애물을 만들었다. 

-이능재, <not-띵>, 2021, 혼합매체, 가변크기 

자이나교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중심에 두지 않고 작은 미물조차 존중하는 생각을 갖는다. 본인이 생각 할 때 자이나교는 ‘공존’에 중점을 두고 싶지만, 깊은 차원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인간 이외의 모든 생물의 자양분이라고 까지 생각이 들 정도이다. [···] 낫을 꺼내 산소의 모습이 잘 드러나게 벌초를 하며 문득 여러 벌레들이 거미줄 같은 집을 짓고, 작은 벌집도 있고, 작지만 이 나무 저 나무에 오르내리며 열매 혹은 필요한 것들을 채집하며 작은 생태계를 형성 하였는데 내가 느닷없이 그 작은 세계 공간을 파괴하는 것을 주저 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해결을 위해 인간의 욕심을 버려야 하고 공존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낫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오히려 반려종으로서 낫을 떠올려보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낫과 자연 모든 존재와의 공존을 짚어본 후, 이후 이어지는 프로젝트에서는 실질적으로 동물의 움직임에 필요한 관절과 근육을 낫에게 물리적으로 적용하여 형상화 해볼 예정이다.

-이송, <burning pixel>, 2021, mixed media, 560x260x290cm 

      <three horizon>, 2021,  단채널 영상, 사운드, 00:59:00  

몇 년간 멈춰버린 생각, 좋지 않은 감정들은 쌓여만 가고 이것들은 오랫동안 퇴적되어 나의 마음속에서 굳은 돌처럼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는 재난이라고 하기에는 익숙해져 버린 현재의 상황은 몸과 마음을 더욱 지치게 만들지 않았을까. 이 돌을 무르게 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의 여행, 내 영혼의 정화를 위해 몸을 이동했다. [···] <세 개의 수평선 three horizon>은 세 개의 수평선, 그리고 뒤집힌 하늘 과 바다의 영상은 반복되는 파도소리, 사운드를 결합한 영상 회화 작업이다. 본연의 수평선은 지우고 세 개의 수평선을 다시 그려 넣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다른 느낌으로 만들고 화면 반전을 이용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최근 우리의 현재는 전혀 평범하지 않는 삶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색함이 익숙해지고 이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과거의 우리 삶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두 작품을 통해 과거에 대한 불편함과 익숙하지 않은 풍경, 그리고 미래를 향한 창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원호, <ARTNOW>, 2006, 사진인화, 90x79cm

<ARTNOW>는 학창시절이나 군복무시절을 경험한 개인의 사적인 기억에서 출발하였다. 두 손을 등 뒤 허리춤에 가지런히 올리는 얼차려 자세로 이마와 발끝만으로 온 몸의 체중과 중력의 부담을 지탱해야 했던 체벌을 모티브로 한다. 어떠한 반론의 여지도 없이 행해진 이런 행위의 목적을 전혀 납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가해자를 충족시켜야만 하는, 그렇지 않으면 더 지독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떨면서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과거 특정한 시간의 경험이 되어버린 이러한 행위가 애석하게도 지금 나를 비롯한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스스로 정기적으로 행해야 할 명상 행위, 혹은 가학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본래 물질적 보상 대신에 예술가에게 주어진 유일한 대가는 상상의 자유를 누리는 기쁨이 아닌가? 하지만 예술가들 역시 그런 자유를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을 하고, 무엇인가를 창출해 내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자유를 담보로 불편한 경쟁의 세계로 떠밀려 가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현실은 유일한 보상의 대가를 유쾌하지 않은 경쟁구도로 만듦으로써 이제는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그러한 현실 앞에 머리를 아래로 쳐 박는 자조적 행위를 해야 하게끔 은근슬쩍 강요한다. 이 작품은 그런 과거의 불편한 기억들과 현재 작가로서의 모습을 결합시켜본 작업이다,

 –이윤석, <speculation object>, 2021, 컴퓨터,매매용 컴퓨터, 실시간 데이터, 가변크기, 60 x230cmx90cm  

모니터 앞에 앉아 수많은 시세와 정보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단순한 거래-공간으로서의 금융시장이 아니라, 무언가 보이지 않고 이해불가능한 거대한 존재와 대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실제로 금융시장은 현실에 대한 이미지로서 작동하는 동시에, 의지를 가진 듯 현실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큰 힘을 행사한다. 나는 이러한 금융시장과 우리의 관계를 감각과 감성의 영역으로 전환해 보려 한다. 정말로 금융시장은 화폐의 효율적 거래를 위해 개발된 세련된 시스템에 다름 아닌 것일까? 어쩌면 금융시장은 수많은 개별 주체들이 모여 창발시킨, 전체보다 강력한 하나의 사물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확장을 위한 자양분을 얻기 위해 우리를 현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금융시장에 종속된 현실은 점차 불확실한 추측(speculation)의 영역이 되어가고,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사변(speculation)적으로 접근하게 되고, 결국 현실-이미지는 반복 재생산되며 투기적-이미지가 현실을 뒤바꾸는, 동시대는 투기(speculation)의 시대이다.

-이지민, <feederduck>, 2021, 실리콘, 표본병, 가변설치

마트에서 계절감 없는 차림의 털보 백인 아저씨가 피도라지, 피토란, 피더덕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구글 번역기를 켰다.  A hairy white guy in sleeveless stood in front of “oriental roots” for a long time and finally turned on Google Translate.

-조은용, 폴 시리즈 <토착화된 유해 외래종>, 2021, 굴포천에서 서해까지의 수집된 쓰레기, 42x42x59cm

인간중심적 공생발생으로 인한 트러블과 함께 하기. 이 주제로 실질적인 환경 트러블을 겪고 있는 근처 지역의 하천부터 바다까지를 거닐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물건, 동식물, 쓰레기 등. 이러한 대상의 집합체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 속에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연결망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토착화된 유해 외래종>은 연결망 위에서 환경의 사건들을 다룬 트러블에 관한 작은 프로젝트 이다.

 

트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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