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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규 〈섬, 썸〉 양동규 〈섬, 썸〉 양동규 〈섬, 썸〉 양동규 〈섬, 썸〉 양동규 〈섬, 썸〉

양동규 〈섬, 썸〉

■ 전 시 명 : , SụM, SOME

■ 작 가 명 : 양동규

■ 전시기간 : 2019. 04. 15. () – 05. 08. ()

*10:00-18:00 / 일요일 휴관

■ 오 프 닝 : 2019. 04. 18 (목) 오후 6시

■ 장 소 :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 문 의 : www.artforum.co.kr T.032_666_5858

■ 주 최 : 대안공간 아트포럼리

■ 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양동규 시각서사와 끊나지 않은 항쟁

 

김준기(미술평론가, 예술과학연구소 소장)

 

여기 누군가의 두개골을 관통한 누군가가 쏜 총알과 누군가의 죽음을 딛고 영광을 얻은 누군가의 훈장이 있다. <XX를 위해 세운 공로>는 훈장과 학살 희생자의 두개골에서 나온 총알을 세 방향에서 찍은 것이다. 제주4.3평화공원 수장고 보관함의 자료 사진 기록 작업 중에 촬영한 것이다. 총알과 훈장이라는 오브제를 통하여 그는 학살과 토벌이라는 양면의 역사적 개념이 양립하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물 기록사진을 찍은 양동규가 그것을 작품으로 발표하는 데에는 그의 아픈 개인사가 들어있다. 양동규는 제주4.3 피해자의 손자다. 그는 어린 아들을 남기고 4.3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가 쓴 다음의 글은 4.3의 아픔을 잘 담고 있다.

 

          얼굴

          생전에 볼 수 없는 그대의 모습

          殘影(잔영)으로나마 대할 수 있음은

          다행으로 여기고

          이 첩에 모셔 옛적의 아버님을

          그려 보고 있나이다.

          비록 음성조차 들을 수 없던 시절에

          가신 님에

          하늘 나라에서 굽어 살피시고

          단 하나 핏줄이 남은 이 자식에게

          아버님의 영으로

          삶의 열매를…….

 

양동규의 아버지가 친필로 적어 그의 선친 사진과 함께 앨범에 넣어놓은 글이다. 양동규의 아버지가 적은 이 글이 들어있는 작품 <아버지의 아버님>(2012)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적은 아버지의 손 글씨와 함께 앨범에 끼워놓은 할아버지 사진을 촬영한 컷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 빛바랜 사진에 의존해 아버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영으로 삶의 열매를’ 기원하는 애틋함과 그 속에 담긴 제주 사람의 슬픔이 오롯이 살아있다. <연결된 사슬>(2012)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4.3의 희생자로만 알고 있는 할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와 양동규 자신을 합성한 사진이다.

 

양동규_아버지의 아버님_91 x 46cm_종이에 피그먼트프린트_2012

양동규_연결된 사슬_00:05:30_스테레오채널 비디오_2013

 

학살터를 찾아 유해를 발굴하는 현장을 담은 ‘학살현장 유해발굴’ 연작들은 양동규 풍경의 핵심이다. 신작 <빈땅>(2018)은 정뜨르비행장 학살유적지에서 유해발굴을 위해 사전 측량한 현장을 찍은 사진이다. 15컷으로 이뤄진 3미터 길이의 대작으로서 측량 후 결과를 얻지 못한 학살터 발굴 현장을 담았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죽음의 흔적을 찾기 위해 측량 실행 여부를 가르는 선을 그어 놓은 장면들을 포착한 것이다. 기록사진의 재구성이 다큐멘터리 영역을 넘어 개념미술로 이어진 경우이다. 선들을 염두에 두고 찍은 사진들을 사후에 모자이크 처리하여 선들의 만남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양동규_빈땅_각 40 x 60cm_한지에 피그먼트프린트_2019

양동규_미여진뱅뒤의 하늘 – 만장 1_100cm x 150cm_한지에 피그먼트프린트_2019

 

<미여진 뱅뒤의 하늘>(2018) 또한 6장의 사진을 이어붙인 3미터 길이의 대작이다. 도두리와 선흘리 유해 발굴 현장에서 돌무더기를 파고 나니 뼈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아이로 추정되는 치아 1개만이 나온 현장, 두개골 흔적만이 남은 장면, 뿌리와 유골이 얽혀 있는 현장에서 그는 70년 시간의 깊이를 절감하며 그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에 그는 몇 가지 다른 요소들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끼워 넣는다. 발굴 현장을 덮고 있던 돌무더기가 있다. 4.3해원상생큰굿 때 담아 놓은 만장 사진들이다. 포커스 아웃 상태로 찍어서 마치 영혼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 같은 이미지들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듯 발굴을 마무리하고 옮기기 직전의 그날 도두리 하늘을 찍은 구름 낀 하늘이 있다.

 

양동규_미여지뱅뒤 묵시록 – 터진목_60 x 90cm_종이에 피그먼트프린트_2013

이렇듯 기록 사진으로 촬영한 인물이나 오브제를 대형 프린트로 전시장에 제시하는 양동규는 사진이라는 기록물에 담긴 아카이브 요소를 자신의 메시지로 끌어들이며, 전유의 미학을 구사하는 개념미술가이다. 그가 인물과 사물을 전유하는 방식은 시각언어 고유의 콘텍스트와도 맞닿아있다. 인접과 소격, 조화와 대비, 견제와 균형, 나열과 교차 등 갖가지 요소에 걸쳐있는 그의 이미지 전유는 양동규의 예술을 사진을 넘어선 사진, 다큐를 넘어선 다큐로서 자리매김하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더욱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그가 문자언어의 서사에 기대지 않고, 직관적인 상상력이라는 시각언어의 서사구조를 매우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여지뱅뒤 묵시록 – 무등이왓_60 x 90cm_종이에 피그먼트프린트_2013

양동규_미여지뱅뒤 묵시록 – 전상_60 x 60cm_종이에 피그먼트프린트_2013

미여지뱅뒤 묵시록 – 다랑쉬 마을_60 x 90cm_종이에 피그먼트프린트_2013

양동규_미여지뱅뒤 묵시록 – 다랑쉬 굴_60 x 90cm_종이에 피그먼트프린트_2013

오브제나 인물, 풍경 등의 사진 이미지를 개념적으로 전유하는 사진과 더불어 양동규 사진 이해의 또 다른 키워드는 ‘4.3’이다. 그는 4.3의 현장을 찾아 풍경 속에서 역사적 서사를 발굴해내는 다큐멘터리 사진 연작을 선보여 왔다. 독립영화 “지슬”에서 수십명이 몸을 피해있었던 <동광리 큰넓궤>(2013)는 그 공간과 인물 사진을 교차 배치한 사진이다. 새별오름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들불축제” 이후의 검게 탄 오름을 포착한 사진 <연상>(2016)이나 숲속 이미지에 학살 희생자 사진을 겹쳐 무심한 풍경 위에 어른거리는 학살의 그림자를 담아낸 <겹쳐진 풍경>(2018)도 풍경사진에서 4.3의 기억을 찾아내는 추체험의 예술이다. 다랑쉬마을을 다룬 작업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2018)는 비바람 치는 초겨울에 혼자 답사한 스산한 마을 느낌을 담은 사진이다.

 

조릿대와 길, 풀섶과 길, 무장대와 토벌대가 사용했던 트(비트, 진지, 은신처) 등을 포착한 일견 평범해 보이는 풍경 사진 <산타기>(2018) 연작도 있다. <미여지뱅듸 묵시록>(2013)은 전상, 다랑쉬마을, 다랑쉬굴, 무등이왓, 터진목으로 이어지는 연작인데, 제주도의 전형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한 샤먼의 흔들리는 이미지를 통하여 양동규는 삶과 죽음이 교차한 제주도의 풍경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학살과 저항의 현장 풍경에 담긴 역사성을 재발견하려는 시선의 풍경이다.

 

늦겨울 살짝 눈이 남아있는 마른 풀섶을 혼자 답사한 양동규는 어두운 역사의 흔적을 찾아 추체험을 시도하는 학살 피해 당사자의 손자다. <침묵하는 빌레못동굴>(2017)은 중산간의 곶자왈 풍경이다. 땅 속에 올라오는 지열로 인해 사시사철 풀이 자라는 특이점을 담아 늘 생명의 기운을 간직한 땅에서 역설적으로 아픈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어이없는 현상에 대한 투쟁>(2018) 연작은 “어이없는 진화”라는 책 제목을 따서 붙인 작품명이다. 한라산 풍경과 채석장, 곶자왈의 나무뿌리 등의 풍경을 통하여 생태적 순리를 거스르는 폭력과 함께 경이로운 생명 현장을 보여준다.

 

양동규의 풍경 사진들에는 전형적인 풍경사진의 외형을 가진 것들과 함께 일반적인 풍경사진들과는 거리가 먼 의제특정적인 풍경들이 있다. 그 의제는 당연히 4.3이라는 항쟁과 학살의 서사이다. 기실 대부분의 제주도를 담은 풍경사진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 특이성 등에 포커스를 맞출 때, 4.3이라는 항쟁과 학살의 정치적 서사를 담은 풍경 사진이 30대 중반의 청년작가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양동규의 예술은 비슷한 연배의 사진, 영상 작가들에 비해 차별적인 출발 지점을 가지고 있다.

 

멀찍이서 넓게 담아내는 풍경사진들이나 바짝 들이대고 좁게 끌어들이는 현장사진들 모두 대상을 카메라 렌즈 속으로 끌어들이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예술가가 끌어들인 대상을 프린트라는 결과로 토해놓을 때의 편집과 배치에 따른 사진 독해의 차별성이다. 물론 작가의 성향에 따라서는 끌어들이는 방법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도 많지만, 양동규의 사진은 입력이나 출력의 방법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후, 대상물들을 어떻게 편집하고 배치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양동규의 경우 사진을 ‘무엇을 찍어서 어떻게 뽑아내느냐’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까지 관심을 집중한다는 의미다.

 

한 컷 속에 모든 것을 담아내려고 하는 사진작가들의 일반적인 속성과 달리 양동규는 여러 컷을 섞어 모자이크하기를 좋아하는데, 여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그것을 양동규의 영상감독 정체성에서 찾고자 한다. 양동규의 초기 작업은 영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1978년에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제주도 토박이다. 해양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대학의 사진동아리 활동을 하며, 예술가의 길을 준비했다. 졸업 즈음 시작한 제주참여환경연대 활동은 오늘날의 양동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민운동단체 활동으로 빡세게 보낸 20대 청년기는 양동규가 예술가의 길을 걷는 데 새로운 자양분을 공급했다. 화순항에서 위미항, 강정마을로 이어지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거치는 동안 양동규는 비판과 저항의 행동주의예술가로 성장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그의 주요 역할은 영상과 사진 기록이었다. 그는 이렇듯 초기부터 영상과 사진 매체를 통하여 현장의 활동가로 성장하면서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영상매체 동인 <3 Frame>(2009-2013)을 꾸렸으며, 이후 <EdArt>(2013-)로 독립하여 영상과 사진 매체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시민사회 진영의 운동가로 출발해서 영상과 사진 예술가로 연착류해온 양동규는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실천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사회(적)예술 실천가이다.

 

그가 연출과 촬영, 편집을 맡은 <평화의 설렘으로 한반도를 만나다>(40분, 2006)는 그해 방송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4.3평화공원과 소록도, 818광주, 지리산, 새만금, 평택 대추리, 나무의 집, 평화박물관, 강화도 서해접경지역인 교동도에 이르는 대장정 답사를 기록한 것이었다. <섬의 하루>(45분, 2008)는 영화평론가 양윤모와 함께 한 강정마을 체류 1개월을 담은 작업으로서 그해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영화 <쨈 다큐 강정>(2011)은 8명의 감독이 옴니버스 형태로 10분씩 맡아 DMZ영화제, 부산영화제에 출품했고, 환경영화제에서 수상했고 극장개봉까지 했으며, 교토와 도쿄, 삿뽀로 등의 일본 도시 순회 상영도 했다. 최근에도 제주4.3 70주년 특집 다큐 <4.3과 제주불교, 잊혀진 기억으로 가다>(2018)의 연출을 맡았을 정도로 그는 영상언어에 익숙한 예술가다.

 

따라서 양동규 사진을 이해하는 일은 그가 영상언어에 상당히 깊게 들어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들불축제의 폭죽영상과 강정마을 구럼비바위 폭파 사운드를 섞은 믹싱 작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무빙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스틸 이미지 모두에 관심을 가진 공감각적 예술가다. 기실 영상 작업은 사진 이미지의 연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율할 것인가에 그 성패가 달린 작업이다. 양동규는 영상 작업의 몽타주를 고스란히 사진 작업에서도 실현하고 있다. 양동규에게 거의 몸에 붙어있다시피 한 영상 작업은 사진 작업의 입력과 출력, 편집과 배치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양동규_XX를 위해 세운 공로_110 x 270cm_한지에 피그먼트프린트_2018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양동규의 개념미술적 요소와 4.3이라는 의제특정성, 그리고 영상언어에 기반을 둔 시각서사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보태서 언급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시민운동단체 활동가 출신의 예술가 양동규에게 들어있는 행동주의예술가(Activist Artst) 정체성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학 졸업과 함께 시민운동에 뛰어든 그는 그 이후에도 제주민예총 사무처장(2014-2019)을 맡아서 30대 후반 5년간을 예술인단체 활동가로 일했다. <4.3문화예술축전>, <해원상생굿>, <탐라국입춘굿>, <제주프린지페스티벌>, <예술로 제주탐닉> 등 다양한 프로젝트의 조직운영과 기획 및 실행 실무 책임자로서 그는 활발하게 활동했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예술과 인간에 대한 총체적 이해의 관점에서 보면 비논리적인 말이다. 예술가는 작품으로만 말하지는 않는다. 흔히들 작품이 예술가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말하곤 하지만, 예술가는 결코 작품과 등치하지 않는다. 삶의 격랑 속에서 작품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나온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이란 오히려 예술가의 삶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 예술노동이 예술체제 그 자체의 자족적인 영역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일반적인 믿음을 깨고, 양동규는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 그리고 프린트 등의 활동을 자신의 작업과도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최근까지 예술인단체 활동을 해온 그는 예술과 활동을 병행하며 양자 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장의 활동가가 예술적 표현으로 자신의 활동지평을 넓혀나갈 때 우리는 그것을 행동주의예술이라고 부른다. 양동규의 출발은 시민운동단체 활동가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그는 늘 현장에 서 있는 예술가다. 그는 현장으로부터 예술을 길어 올린다. 다수의 제주도민이 그러하듯이 양동규도 4.3희생자의 유족으로서 자신의 문제에 뿌리를 두고 4.3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양동규 예술의 개념미술과 4.3의제, 시각서사 등의 요소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행동하는 예술가 정체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전업작가 이데올로기에 함몰하지 않고, 사회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적 삶의 과정에서 예술을 길어 올리는 것이 양동규 예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4.3을 반란과 토벌/학살 사건이 아닌 항쟁의 역사로 정명하는 날까지 이어질 양동규의 예술은 끝나지 않은 항쟁이다.